집에서 담은 가양주 상품화…핵안보 정상회의·청와대 공식만찬주로 선정 日·홍콩 등 진출… 서울역 매장 매출 30%는 외국인 관광객
복순도가 김민규 대표 [복순도가 제공]
김민규 복순도가 대표
목이 긴 샴페인 잔에 따라놓은 술에서 '뽀글뽀글' 기분좋은 기포가 올라온다. 입을 대면 톡 터지는 천연 탄산에 새콤달콤한 요쿠르트 향이 치고 들어오는데, 곧바로 익숙한 누룩과 쌀의 맛이 입안을 감싸며 뒤따른다. '막걸리계의 돔페리뇽'이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국내 프리미엄 막걸리 복순도가 손막걸리다.
양조장 건축부터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 마케팅을 모두 맡고 있는 김민규(42·사진) 복순도가 대표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1859년에 설립된 미국 뉴욕의 명문 예술학교 쿠퍼유니언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학풍으로, 토머스 에디슨을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죠(웃음). 10년이 넘게 유학을 했으니까요. 소수정예로 유명한 쿠퍼유니온 내에서도 건축 전공은 20명 안팎이었고, 졸업은 더 어려워서 그중 졸업자는 14명도 안돼요. 교수 한명당 학생은 두세명 뿐인데다, 초청교수 제도도 잘돼 있었고 인근 뉴욕대나 컬럼비아대학에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몰입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건축가가 될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더욱 건축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경험하고자 했다. 해부학과 철학, 도예를 배우고, 패션, 웨딩, 미디어업계 등에서 인턴 업무를 경험했다.
전도유망한 젊은 건축가의 귀국, 그런데 인생의 경로는 예상치 못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골집에서 보내준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를 꺼낸 것이 계기였을까. 어머니가 친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방식으로 빚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나니 긴 유학생활로 잊혀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부엌과 돌담 밑에 가지런히 자리한 술 항아리들, 흙이 날리는 집 앞의 풍경까지. 김 대표는 울산 울주군 상북면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손수 담는 술과 음식이 유명해서 그의 시골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인들이 어머니의 술을 사고 싶다고 하는데, 팔 수는 없다고 했더니 상품화 하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명품 브랜드도 오래 전 장인의 창작물을 헤리티지(전통)로 삼아 현대적으로 풀어가는데, 좋은 전통이 있고 브랜딩을 할 수만 있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은 물론 마을 공무원까지 주세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공부해 가며 면허를 내고 도가를 지어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버클리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동생도 합류를 했고요."
복순도가 손막걸리 [복순도가 제공]
어머니의 함자(박복순)를 넣어 브랜드를 만들고 고향 마을에 양조장을 지었다. 김 대표가 설계하고 동네 주민들이 시공을 했다. 자연의 변화와 순환, 즉 발효의 의미를 담은 건축물이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술을 빚었다. 볏짚을 넣어 태운 뒤에 햇볕에 말린 항아리에 손으로 누렇게 띄어낸 누룩과 100% 국산쌀을 넣어 황토방에서 보름 동안 숙성을 시킨다. 쌀의 탄수화물이 발효하면서 천연 탄산과 알코올이 생겨난다.
샴페인처럼 경쾌한 쌀술에 대한 입소문이 나더니 국무총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고향에서 전화를 받은 부모님은 '높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미리 좀 보내달라는데 처음엔 장난전화인가 했다'고 한다. 2012년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2013년엔 청와대 공식만찬주로 국빈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 로우로우, 케이스스터디 등 유명 브랜드들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해왔고, 부산에선 도가 컨셉의 F1963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서울 노들섬에 음악과 발효를 내세운 라운지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흔치 않은 행보에 대해 같이 공부한 선후배들이나 교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모교에선 졸업생 중에 발효건축에 대한 논문을 쓰고 그걸 바탕으로 고향에서 양조장을 만들어 브랜드화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더라고요. 저희 교수님도 양조장 사진을 보시더니 '건축학은 결국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하는 학문이다. 건축가가 되는 것이 학문의 목표가 아니라 건축적인 사고를 하길 바랐다'면서 너무 좋아해주시고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저도 후배들에게 자신들의 전공과 환경, 그 한계를 놓고 꿈을 꾸지 말라고 조언해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양조장이 생기자 외지인이 올 일 없던 마을에도 도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상추와 깻잎을 따와서 양조장 앞에 놓고 팔았다. 그 모습을 본 김 대표는 한국의 도시와 농촌은 서로 동경하지만 단절돼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마을 사람들과 벼룩시장을 열기도 하고 마을의 지도를 직접 만들어서 방문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손막걸리의 해외 진출에도 나섰다. 지금까지 일본, 싱가폴, 홍콩에 진출했고, 베트남과 중국과도 협상 중이다. 서울역에 있는 복순도가 매장의 매출 3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K-컬쳐'가 세계 시장의 트렌드가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매체들도 관심을 갖고 연락해오기 시작했다. 천연 효모와 고급 아로마 오일 등을 이용해 기능성 화장품도 만들고 있다. 건축가가 되려던 청년의 목표는 기다림과 정성으로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어느새 바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