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수사, 전문성 부족에 징수율 고작 6.92% "건보, 전국 조직망·데이터 보유…신속 수사 가능" 특사경 도입 시 '연간 2000억원' 재정누수 차단 신규 불법개설기관 억제, 자진 퇴출 등 자정 효과도 # 암치료에 산삼약침이 효능이 있다고 속여 말기 암 환자 5명에 1억3000만원을 편취한 A 씨. 그는 사무장병원으로 대법원 환정판결 이후 폐업하기 전까지 환자 118명에게 약 38억원가량을 선결제 받은 뒤 잠적했다.
# 면허대여약국을 개설·운영하며 약 58억3000만원을 편취한 B 씨. 그는 2014년 3월 수사의뢰가 들어왔으나, 기소까지는 8개월이 걸렸다. B 씨는 이 기간 본인의 토지를 모친 명의의 법인에 매매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했다.
사무장병원, 면허대여약국 등이 불법으로 챙긴 건강보험 급여비가 3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질 낮은 의료서비스와 위법 행위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까지 위협하는 실정이다.
21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법개설기관 폐해로 발생한 건보 재정누수는 3조37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징수율은 6.92%다. 3조원이 넘게 국민 세금이 샌 것인데, 돌려받은 돈은 고작 2335억원에 불과하다.
건보공단은 2014년부터 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행정조사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단속 프로세스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건보공단은 신고를 접수받고, 불법·부당 정보시스템(IFIS)을 통해 조사 대상기관도 선정해 수사를 요청한다. 보건복지부, 지자체와 협업해 행정조사를 벌인 뒤 경찰청에 수사의뢰를 한다. 이후 경찰청에서 송치 결정이 되면 건보공단이 지급보류·환수결정을 하고, 검찰청이 기소·불기소 여부를 따진다. 검찰의 기소가 결정되면, 건보공단은 쟁송 사후관리에 착수한다.
공단은 사실상 전반적 조사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권한이 없어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 요청에 따른 참고인 조사 외에는 개입이 불가하다. 불법개설기관을 적발하고, 행정적 근거를 만들어 수사 의뢰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불필요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해법으로는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이 꼽힌다. 특사경은 법률로 정한 특별한 사항에 대한 범죄나 행정 등 전문성이 필요한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을 의미한다. 일례로 주가 시세 조작 등 불공정 거래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는 금융감독원 특사경이 있다.
건보공단의 특사경 권한 부여에는 불가피성, 전문성, 긴급성 등이 존재한다. 우선 조사 초기에는 불법 증거 자료 확보와 계좌추적이 중요하다. 이는 강제 수사권이 동반돼야 가능하지만, 현재 건보공단은 수사권이 없어 혐의 입증에 한계가 있다. 수사를 의뢰해도 평균 11개월이 소요된다. 해당 기간 용의자, 피의자들은 재산을 은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게 된다.
불법개설기관 입증을 위해서는 의료에 대한 고도의 이해도 동반돼야 한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면서 IFIS를 운용하는 건보공단이 수사권을 갖는 게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더욱이 2014년부터 행정조사 업무를 수행해 온 건보공단은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상태다. 의료·수사·법률 전문 인력만 3302명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조성된다. 건보공단은 불법개설기관에 요양급여비용이 지급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빠른 수사 등 엄격히 관리할 책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석배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건보공단은 전국적 조직망과 전문 조사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불법행위 포착이 빠르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다"며 "특사경 부여 시 조기에 불법개설기관 근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불법개설기관은 의사협회에서도 통제가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해 2차례에 걸쳐 5개 의약 단체와 '제도개선협의체'를 통해 불법개설 근설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의협으로부터 불법개설기관 신고 이첩은 10년 동안 고작 2건에 그쳤다. 의협 홈페이지에 '불법개설 신고센터' 개설·운영도 수차례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공단 특사경 권한 부여 시 수사착수부터 종결까지 시간을 평균 3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연간 약 2000억원 규모의 직접 보험 재정누수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다. 건보료를 비롯해, 국고와 지방비(의료급여), 국민사보험비(보험사기),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비용(산재) 등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과 보험료 등의 재정누수도 막을 수 있다.
형사처벌과 재정누수 차단에 주력한 수사로 채권이 조기 확보돼 재산은닉 및 사해행위도 최소화할 수 있다. 10%를 채 넘기지 못한 징수율도 높일 수 있다. 불법개설기관의 신규 진입 억제, 자진 퇴출 등도 기대할 수 있다.
건보공단 특사경 법안은 이번 국회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75명이 공동 발의로 이름을 올렸다. 더욱이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에서도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 심사로 배분된 상태다. 여야 의원들의 공동발의와 지자체장들의 지지로 국회 통과만이 남은 상태다.
공단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특사경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전사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대비해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운영방안 등 법 시행을 위한 제반사항을 사전에 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