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역사 중시…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사북항쟁' 대표적 "개인적으로는 수몰민 등 개발로 인한 강제 이주 공부하고 싶어"
김아람 한림대 사학과 교수[김아람 교수 제공]
김아람 한림대 인문학부(사학전공) 교수
"1980년대 제가 살았던 상암동 인근에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장이었습니다. 주변에 판자촌과 고아원도 적지 않았지요. 이 때문에 초등학교 한 교실에 고아인 친구들도 5~6명씩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년·소녀들이었습니다. 제 역사 연구는 이런 어린시절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한국 현대사학자 김아람(40·사진) 한림대 인문학부(사학전공) 교수가 19일 디지털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첫 마디다. 그의 연구주제는 삶 속에서 도출된다. 현재 연구하는 한국전쟁 고아와 난민, 납북귀환어부, 사북항쟁 등이 그렇다. 공통적으로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삶, 역사에서 소외된 삶을 조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며 "나의 이웃에서부터 인연이 시작됐고, 그것이 연구 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 고아였던 친구를 본 경험은 전쟁 난민을 연구하는 동기가 됐고, 현재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자로 살아가는 삶은 납북 귀환어부와 사북항쟁으로 연결됐다"고 부연했다.
김아람 교수 저서 '난민, 경계의 삶'(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사회
최근에는 난민을 중심으로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했다. 제목은 '난민, 경계의 삶'(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사회)이다. 김 교수는 난민을 한국전쟁으로 인해 배태된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시절 봤던 고아 친구가 보통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난민 역시 삶을 개척하는 주체로 본다. 분단과 한국전쟁, 이주와 정착, 구호와 개발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난민'의 시각을 투영한다.
김 교수는 "보통 1960년대를 전쟁에서 벗어난 경제 성장시기로 규정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각지에서 발생한 난민은 여전히 상흔을 극복하고 있었다"며 "이들은 국가의 이주·정착과정에서 생존하고 국민으로서 재건과 개발의 주체도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전쟁의 비극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다시는 한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게 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실천적 역사학자다. 그는 지난 2022년 강원일보에서 주관한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진실규명 포럼'에 참가해 북으로 강제 납북됐다가 귀환한 뒤 간첩으로 내몰린 납북귀환어부들의 명예를 회복해줄 수 있는 특별법 도입을 촉구했다.
당시 김 교수는 1960~1980년대 국가가 납북 귀환어부를 법적 처벌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 근거로 △어로저지선과 어업통제선의 불분명한 경계 △납치될 당시 군경의 경비 부실 △반공법 적용의 부당성을 들었다. 그는 "어부들은 어로 저지선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도 모른 채 조업을 하다가 북한에 납치된 것"이라며 "그런데 귀환 후에 무리한 법 적용과 불법 수사, 고문, 일상적 감시 등으로 인권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이어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 각종 안보위기가 발생하자 반공법을 강화시키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행한 사건으로도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김아람 한림대 사학과 교수[김아람 교수 제공]
김 교수는 반드시 특별법 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섭외하고 소송을 진행해 피해 보상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너무 억울하고 부당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런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자는 것인데, 국회에서는 이것을 과거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며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장의 역사를 중시한다. 교수로 임용된 후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사북항쟁이 대표적이다. 사북항쟁은 1980년 4월 21일~24일까지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인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광원과 가족 등 6000여 명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근로환경에 항거해, 나흘간 사북읍을 점거한 사건이다.
김 교수는 "2015년에 답사를 갔다가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인 동원탄좌를 접했고, 관련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 계기로 역사문제연구소 위원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사북항쟁동지회분들과 인연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북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인 만큼 피해자 분들과 직접 구술 인터뷰를 하고 현장을 봐야 한다"며 "그런데 연구자들이 문헌자료는 열심히 탐독하지만 지역 현장이나 인물 만나는 것을 열심히 안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향후 목표를 '역사의 사회적인 쓸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역사 관련 예능이나 대중 역사 서적에는 관심이 많지만, 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한다면 '무엇을 먹고 살 것이냐'는 상반된 반응을 한다"며 "그래서 역사 전공생들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배양하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 등 개발로 인한 강제 이주를 공부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역사교육 학사와 역사학 석사, 연세대에서 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장,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분과장 등을 지냈고, 연세대·서울대·이화여대·가톨릭대 등을 출강했다. 지난 2020년부터 한림대학교에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