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삼성·LG엔솔 보조금 불확실해
IRA 수정땐 투자부담 가증될듯
디커플링에 대중국 견제 심화

미국서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서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친환경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강한 압박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부는 당장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만들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대대적인 수정을 추진할 것이고, 보조금을 기대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 제조업체들은 다시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1기'에서는 중국을 중점적으로 견제하는 정책이 많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좀 더 포괄적인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을 보고 있다. 중국이 잠식하고 있는 태양광과 철강, 전력 등 일부 산업에서는 반사이익이 있을 수 있으나, 전체 수출에서 20%안팎을 차지하는 반도체에서의 타격이 뼈 아프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각각 64억달러(9조원),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달러(62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기로 했다. 동반 진출하는 한국의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보편적 기본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달러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무역정책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고, 무역상대국과 동일한 관세율 적용을 원칙으로 하는 '상호무역법'을 제정하겠다는 게 골자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상대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특히 취약한 구조다. 올해 역대 최고의 대미(對美) 수출액을 기록 중이던 상황이 되레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견제'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전방위적으로 중국과 교역 관계를 축소·단절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공약을 밝혔다. 바이든 정부의 디-리스킹(de-risking) 노선과는 차별화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제품에는 60% 이상의 징벌적 관세율을 부과하고, 국가전략산업 대중 수출을 전면 통제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중국 완제품의 대미 수출이 줄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 수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뜻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차전지 등 일부 산업에서는 우리 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긍정적 분석도 나오지만, 이 역시 득실이 혼재한다. 2기 트럼프 정부가 IRA로 받는 전기차·배터리 보조금 등을 손 댈 경우 당장 투자부담이 가중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산업 대부분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며 "디커플링으로 인한 반사이익보다는 중국 시장 침체로 인한 손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2기 트럼프 정부가 당장 보조금을 철회하진 않겠지만, 더 많은 투자를 강요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여기에 관세를 더 높여 자국 내에서의 생산을 한층 더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단 10센트도 내놓지 않아도 됐다. 일련의 관세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내 말은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와서 반도체 기업을 공짜로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수출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 및 국내·외 산업 구조 등 우리 경제 전반에도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우선 미국 내 공급망을 구축한 기업에 법인세 혜택을 확대하는 인센티브가 늘어난다면, 대미 투자 비중이 큰 기업에는 프리미엄이 가능하다.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이 시작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방영된 폭스뉴스의 '포크너 포커스'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에 4만2000명의 미군이 있다. 그들(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며 "그들(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아니,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고 보편관세가 본격화하면 글로벌 교역량이 감소하고, 투자도 줄어들 것"이라며 "과거 대공황처럼 세계 경제 자체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조상현 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트럼프 후보가 강력한 관세조치를 예고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은 대중국 견제와 자국중심주의 강화에 대해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달라진 의회 정치 지형을 고려해 통상입법 동향을 적극 모니터링하고, 분야·조치별 우리 무역과 투자에 미칠 실질적 영향을 분석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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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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