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기관, 2000억 펀드 조성 4일 밸류업 ETF·ETN 13종 상장 전문가, 자금 유인책 부족 지적
서울 여의도에서 31일 오전 기업 밸류업 펀드 조성을 위한 협약 체결 후 기념촬영 모습. (왼쪽부터) 조영익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윤창현 코스콤 대표이사,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순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이창화 금융투자협회 전무. [사진 신하연 기자]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거래소와 증권유관기관이 2000억원 규모의 밸류업 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이와 함께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 12종도 상장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밸류업 정책 취지에 부합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과거 정부의 정책형 펀드들 역시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을 유도하는 데는 일부 성공하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오히려 단기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을 보였다.
◇2000억원 규모 밸류업 펀드 조성…밸류업 ETF에 투자
정은보 이사장은 31일 여의도 서울사옥 마켓타워 회의실에서 기업 밸류업 펀드 조성 협약식을 열고, 밸류업 ETF 상장 운용사 대표를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열였다.
정 이사장은 이 리에서 "기업 밸류업 펀드 조성과 ETF 출시를 통해 밸류업 참여 기업에 대한 투자 분위기가 조성되면,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 유인이 증가하고 밸류업 프로그램도 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증권금융, 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 코스콤 등 유관기관이 1000억원을 출자, 총 2000억원 규모의 기업 밸류업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밸류업 지수 기반 ETF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밸류업 ETF 12종도 신규 상장키로 했다. 이들 ETF는 지난 9월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추종한다. 지수에는 시장대표성,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 요건을 충족한 기업들이 포함됐다.
밸류업 참여 기업에 대한 투자 분위기를 조성해 기업의 밸류업 공시 참여를 유인하겠다는 복안이다.
현재까지 한국거래소 밸류업 공시 홈페이지에 기업가치제고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는 유가증권시장에서 65개사로, 지난해 12월 결산 기준 620개 코스피 상장사 중 10분의 1 정도가 참여했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밸류업 공시에 나선 기업이 9곳으로, 전체 1146개사 중 7.9%에 그쳤다.
지수 자체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9월 24일 밸류업 지수 발표 직후 수익성 기준에 못 미친 SK하이닉스가 포함되는 등 편입 종목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편입종목 성정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결국 거래소는 지수 발표 이틀 만에 연내 지수에 대한 연내 구성종목을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기 자금 유입 한계"…실효성 '갸우뚱'
시장에선 밸류업 정책이 취지에 부합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유인책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나 ETF 운용사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확한 어드벤티지를 줘야하는데 단순한 펀드 조성이나 ETF 출시로는 장기적인 주가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정책의 지속성과 연속성을 위해선 당국도 이벤트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팔로업과 보완조치 등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관계자도 "ETF를 내놓은 운용사들도 자금 유입에 대한 큰 기대가 있는 상황은 아니"라면서 "밸류업은 인식 개선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장기적인 자금 유입이 한계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인위적인 자금 유입이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을 유도할 수는 있으나, 정책의 연속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지수 자체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밸류업 지수가 구성 종목들의 실제 성과와 직결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인 수익률 개선도 요원해진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핵심 아젠다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책형 펀드를 활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녹생성장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0~2021년 등장한 뉴딜펀드만 봐도 펀드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을 한참 밑돌고 있다. 이날 종가 기준 'KODEX 탄소효율그린뉴딜'은 출시 이후 16% 넘게 빠졌다. 'TIGER 탄소효율그린뉴딜'(-17.48%) 'HANARO 탄소효율그린뉴딜'(-17.91%) 등도 상장 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밸류업 방안을 공시했지만 지수에 편입되지 못한 기업도 이번 펀드의 투자 대상이라는 점 역시 시장에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밸류업 공시를 유인하기 위한 측면에서 결정된 부분 같은데, 투자 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이 부재할 경우 자칫하면 '그린 워싱'과 같이 '밸류업 워싱'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