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를 통해 등급을 부여 받은 부실채권(NPL)이 지난 9월 4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무등급 부실채권이 유통되는 것은 투자자들이 싸게 사서 이윤을 남기는 전략에 집중한 결과다. 사업장 재구조화가 시급하다면서도 부실채권 시장 스스로 자정기능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등급 부실채권으로 시장이 바빠지다 보니 경·공매를 신청해도 2달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오는 적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31일 한국신용평가가 'Monthly KIS SFG보고서'를 통해 밝힌 유동화자산별 상세현황에 따르면 지난 9월 신용등급이 있는 부실채권은 4건으로 집계됐다. 등급을 받을 경우 해당 부실채권은 펀드에 편입되는 등 공신력을 갖춘다.
다만 부실채권이 등급을 받는 경우는 분기에 1~2회 정도로 드물다. 지난달에는 4건이 신용등급을 받았지만 잔액은 미미한 수준이다. 9월 신용등급을 받은 부실채권 잔액은 총 1543억원이다.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부실채권 운용자산이 지난 9월 기준 3조97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신용평가를 받지 않은 부실채권이 시장에서 대거 유통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등급을 받지 않은 부실채권이 많아지면서 경·공매 시장은 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부실채권 규모는 미상환 원금 잔액이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상대로면 역대 최대치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국내은행 부실채권 잔액은 14조4000억원이다. 작년 12월 말에 비해 1조9000억원 증가했다. 은행의 연체 채권은 2022년 4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22년 말 0.40%, 작년 말 0.47%, 올해 6월 말 0.53% 등으로 올랐다. 상·매각, 담보처분, 부실채권 정상화 등을 포함한 은행권 분기별 부실채권 정리 실적은 작년 1분기 2조7000억원에서 2분기 3조9000억원으로 늘었고 이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새 2배가 넘은 것이다. 연체율은 8.36%로 계속 오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차원에서 경·공매 활성화를 주기적으로 지도하고 있고, 감독당국 역시 적기시정조치를 원칙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선 부실채권 증가속도에 비해 옥석가리기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고 있고,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부실 물량이 많다보니 사업자 입장에선 조금 더 안전하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지만, 부실이 심한 채권은 아예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등급이 없는 경우 가격을 논의해야하는데, 부실채권(NPL)전업사나 투자자들에게는 채권을 싸게 매입할수록 이익을 크게 남기는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경·공매를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순번이 돌아오는 경우는 최장 두 달이 넘는 상황이다.
신용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등급을 받은 부실채권은 분기별로 1개가 있을까 말까다. 유암코 같은 회사에서 등급이 있는 것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면서 "자산유동화 전문회사들이 싸게 매입해 이익을 남겨 매각하는 식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이다보니 경·공매가 몰려 좋은 물건만 빠져나가는 식으로 옥석가리기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