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 A씨는 막막한 심경을 쏟아냈다. 30년 이상 산업현장에 몸담으며 기업을 일궈온 A 대표는 "지금은 버티는 것만도 힘겹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린다면서 만든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이유다.
대표적인 게 소프트웨어 차등점수제다. 공공사업에서 저가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기술점수에 차등 폭을 키워서 변별력을 높인 제도다. 이전에는 100점 중 기술점수 비중을 90점까지 둬도 기업 간 점수 차가 크지 않다 보니, 나머지 10점 비중의 가격에서 벌어지는 차이를 뒤집기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기업이 저가를 내세워 시장의 물을 흐리는 일이 빈번했다.
문제는 2020년말 시행된 이 제도가 아직 겉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기침체로 민간의 IT투자가 위축되자 경험 없는 기업들이 공공시장에 뛰어들어 최저가를 써내면서 시장이 어지러워졌다. IT기업들은 체감하는 제도 도입률이 10% 정도라고 말한다. 그 결과 오랜 기간 경험과 기술을 다져온 기업들이 0.0X점 차이로 사업에서 밀려나고 있다. 문제없이 끝나면 좋겠지만 상당 사업은 차질을 빚는다. 발주기관도 손해다.
제도 도입률이 저조한 것은 차등점수제가 선택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은 과거의 관행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A 대표는 "작년까지만 해도 1개 프로젝트를 두고 평균 3개 내외 기업이 경쟁했다면 지금은 7~8곳이 붙는다. 그런데 새로 참여한 기업들은 대부분 제도상 최저가인 80%를 쓴다"면서 "수주 확률과 수익률이 모두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원격지 개발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발주기관 근처에 별도 사무실을 두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구태가 계속되고 있다. 바뀐 제도에 따라 기업이 작업 장소를 발주기관에 제안할 수 있지만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원격지 개발 도입률도 20% 수준이다.
가뜩이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를 하려고 기업들은 지방에 숙소와 사무실을 확보하고 직원들을 보내야 한다. 워라밸은 언감생심인 상황이니,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발주기관들이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은 인재와 기술에 투자할 돈을 엄한 곳에 써야 한다. 결국 정부 예산이 쓰여야 할 곳이 아닌 옆길로 세는 것이다. 클라우드와 통신으로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내 근처에 와서 개발하라"는 횡포는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알 수 없다.
모호한 사업 제안요청서와 과다한 과업 요구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일의 범위가 모호한 상태에서 시작된 사업은 발주기관과 수행기업 간의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고무줄 식으로 늘어나는 발주기관의 주문을 소화하다가 지쳐서 법원을 찾는다. 공무원들은 "나는 관행대로 했을 뿐, 불만 있으면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식이다.
민간시장에서 이런 발주기업이 있으면 진작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철퇴를 내렸을 것이다. AI 혁신을 내세우는 정부가 국내 IT생태계 건강을 갉아먹는 주체가 됐다.
기업들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어젠다에서 IT가 보이지 않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에서조차 방송과 정치 이슈에 소프트웨어는 잊혀진 이슈다. 공무원들은 숨죽이고 있다. 정치 피로가 국가의 활력을 떨어뜨린 결과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용산과 국회밖에 안 보인다. 그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힘을 잃어가는 조직이 관료사회다. 기업들은 전 정부도, 전전 정부도 뭔가 귀담아 듣고 풀어보려는 노력은 했는데, 지금은 국회도, 정부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한숨 쉰다.
국가AI위원회를 만들고 글로벌 AI 3대 강국이 되겠다는 정부가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30% 수수료의 '인앱결제 횡포'로 공격받는 구글·애플보다 더하다. IT산업이 무너지면 AI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나. 미국, 중국, 일본 등은 자국 기업을 어떻게 더 키울지를 고민하고 과할 정도로 밀어준다. 우리 정부와 정치는 뭘 하고 있나. 대한민국에 IT 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다. ICT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