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잠 못자는 사람들을 위한 독특한 직업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른 바 '수면 메이커'(Sleep maker)다. 편안한 대화와 정서적 공감대를 통해 수면을 유도하는 게 이들의 일이다. 주 이용 고객은 젊은 직장인, 결혼 스트레스나 생활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특히 일명 '996' 기업문화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한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 근무한다는 뜻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 내내 일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엔 '996'을 넘어 '896'을 도입하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전문가포럼(CSF)에 따르면 지난 6월 대표적 SNS인 웨이보(微博)에는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업체 CATL이 주 6일 오전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는 '896' 근무제를 시행했다는 글이 인기 검색어 목록에 올라왔다. CATL이 직원들에게 매일 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일하는 방식으로 100일동안 분투하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CATL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에는 "최근 신에너지 승용차 시장 보급률이 처음으로 50%를 넘겼지만, 시장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경쟁도 치열해졌다"며 "조직이 부여한 임무를 더 잘 완수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첨부돼 있었다. CATL이 이렇게 한시적으로 '896'까지 도입한 것은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하락, 2위 BYD와의 격차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살인적인 근무는 주요 업체들에 일상이 된지 오래다. 치루이(奇瑞·Cherry) 자동차 부사장은 토요일도 정상적인 근무일이라며 관리자급 직원에게 법적인 리스크를 피할 방법을 강구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전기차 업체 NIO(蔚來) 직원은 입사 후 3년간 초과근무가 일상이었다며, 8개월동안 500시간 가까이 초과근무를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노동법에 따르면 일일 근무시간은 8시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을 초과해선 안된다. 필요에 따라 협의 하 근무시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연장 근무시간은 하루 1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하루 3시간 이내, 월 36시간 이내 가능하다. 또한 매주 최소 하루의 휴일은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조항과 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요 기업들 사이에 '996', '896'이 일반화된 것은 CATL이 밝혔듯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쟁은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도 불구, 중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우뚝 선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제조대국'으로 부상했다. 싸구려 '짝퉁'만 생산하고 있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위협할 국가로 떠오른지 오래다.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세계 1위이며, 배터리 시장도 한국을 추월했다. 영상 디스플레이 시장에선 고급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글로벌 시장도 49.7%를 장악, 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조선 산업 종합경쟁력도 1위이며, ICT·SW, AI(인공지능), 우주·항공·해양, 에너지·자원, 석유화학 등도 한국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반도체 산업도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건 시장 문제다. 중국은 메모리를 제외하고 생산능력, 팹리스 및 후공정 경쟁력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 한국을 앞서고 있다. 일본에서 산업을 넘겨받은 대한민국이 디지털 시대에 중국으로 주도권을 넘기는 징후가 뚜렷하다.
이처럼 질주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996', '896'을 앞세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기 불황과 높은 청년 실업률이 이를 지탱하는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두려운 건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 팽배한 '위기의식'이다. 잘 나가면서도 삐끗 잘못하면 한순간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기업문화는 잘못된 것으로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되는 건 지금 우리에겐 그런 위기의식조차 없다는 점이다. 사회의 주 화두는 '웰빙'이며, 정치권은 어떻게 하면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만들까 혈안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세계 최고의 상속세율,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노동자측에 기울어진 노동관계법 등 기업하려는 의지를 꺾어놓는 법·제도와 문화가 팽배하다. 자유롭게 일할 자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고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지난 2분기 0.2% 마이너스 성장했던 우리 성장률은 3분기 겨우 0.1% 성장에 그쳤다.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은 떨어졌다. 위기의 징후는 한발짝 한발짝 다가오는데 정치권은 날이면 날마다 쌈박질이고, 퍼주기 정책에 골몰한다. 대한민국의 '피크'는 이미 지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