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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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층 더 격화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자본의 중국 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는 국내 산업계에 타격을 줄 우려가 있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중국 첨단기술에 자본 투자하지 마"=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중국의 AI·반도체·마이크로전자기술·양자컴퓨팅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 금지 규정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규정은 2023년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 명령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규제 목표는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 군사력 증강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자본이 목록에 오른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집행할 경우 미 재무부에 신고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 재무부는 올 6월 해당 규제에 대한 제정안(NPRM)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했으며 조만간 발표할 방침으로 파악됐다.

제정안을 보면 규칙이 적용되는 대상은 지분 인수, 지분 전환이 가능한 채권 금융, 합작투자, 그린필드 투자(투자국에 생산시설·법인 설립) 등이다. 상장 기업, 일정 규모 이상의 펀드에 대한 투자 등 일부 거래는 예외가 인정됐다.

당시 재무부는 "미국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하는 차세대 군사·정보·감시·사이버 능력 등에 중요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려는 우려 국가(중국·홍콩·마카오)가 미국의 해외투자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로라 블랙 전 재무부 관료이자 워싱턴 로펌 에이킨 검프 변호사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미국 정부가 11월 5일 대선 전에 규제를 발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규정이 발효되기 전 재무부에서 일반적으로 최소 30일의 유예 기간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전방위로 막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의 AI 개발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는 AI와 AI 개발·연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보 기술로 분류돼 이미 광범위한 대중 수출 제재가 적용되고 있다. 양자 컴퓨팅은 암호화와 암호 해독의 핵심 기술로 군사적 목적은 물론 해킹 등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미 상무부는 TSMC가 화웨이용 스마트폰·AI 반도체 제조에 관여했는지 조사에 나섰다. 화웨이가 다른 중개회사를 내세워 TSMC에 접근해 AI 반도체를 확보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 상무부가 TSMC·화웨이 사이 거래에서 수출 규정 위반을 확인할 경우 미국 기술에 대한 일시적인 접근 제한이나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첨단 공정 기술의 중국 이전을 제한하고 있어 이번 추가 규제로 반도체 산업에서의 미·중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의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현재의 경쟁이 아닌, 미래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라며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는데 이는 반도체와 AI 반도체 등 미래 기술의 근간을 흔들어, 미국의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AI 분야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30% 수준으로 아직 크다"며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국은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은 주요 기술의 수출과 협력을 강하게 제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부정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야"=미국의 강경책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생산시설 운영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1년 단위로 허가를 받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오는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생산의 24%를 차지하겠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은 기술 경쟁력 확보와 함께 미·중 간 균형점 찾기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최 교수는 "한국은 미국의 정책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며 "미국과 기조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 수출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도 기대된다.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될 경우, 전 세계 기업들이 중국의 저렴한 AI모델 대신 국내 AI모델을 대안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업체들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저렴한 비용을 앞세운 중국의 AI 모델은 빅테크의 AI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이-라이트닝'의 추론 비용이 토큰(AI가 텍스트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본 단위) 100만 개당 14센트(약 190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는 오픈AI의 'o1-미니'가 26센트(약 350원)인 점을 고려하면 46%가량 저렴한 수준이며, GPT-4o의 4.4달러(약 6000원)와 비교하면 훨씬 낮은 비용이다.

FT는 "중국 AI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사양 AI 반도체와 낮은 인건비의 컴퓨터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전략으로 가격을 낮췄다"며 "알리바바, 바이두, 바이트댄스 같은 중국의 기술 대기업들도 추론 비용 절감을 위해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한 IT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오히려 수출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저렴한 AI 모델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면서 국내 산업이 위축될 수 있었지만, 만약 미국의 규제가 심화된다면, 미국 기업들도 중국 대신 한국 등 다른 국가의 모델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아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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