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의 과학 분야는 인공지능(AI)이 장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AI 기계학습(머신러닝)의 기반을 닦은 연구자들이 수상했고,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AI 모델을 개발한 교수와 기업 관계자들에게 돌아갔다.
AI는 이미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고, 인류에 이로운 기술이 되었다. 그동안 기초연구, 순수과학의 학문적 성과에 상을 수여해 왔던 노벨위원회가 이처럼 이례적 결정을 내린 것은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파급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AI는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에 도입되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 AI가 접목되면 단시간에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 방향 설정, 실험 및 결과 예측에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구글 딥마인드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알파폴드 외에도 신물질 합성법을 AI로 예측하기 위해 '재료 탐색 그래프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이로써 새롭게 합성한 물질의 안정성을 실험실에서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조선 회사의 선박 설계, 바이오 회사의 신약 개발 등을 위해 일부 대기업 위주로 AI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추세다.
AI가 R&D 생산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인공지능 기반의 연구개발 혁신(AI+R&DI)'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이것은 단편적인 AI 활용이 아니라 R&D와 관련한 생태계 전반에 AI를 심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AI 기반의 연구설계 및 실험 방식을 산업 현장 전반에 걸쳐 적용하는 것은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다. AI를 이용해 기존 특허, 논문, 실험 데이터를 분석해 기술 개발 방향을 설정하고 가상 실험, 결과 예측을 하는 솔루션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개별 기업에 필요한 솔루션 개발 지원은 물론이고,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여러 기업이 공동 사용 가능한 솔루션도 보급하며, 24시간 가동 가능한 AI 자율실험실도 도입한다.
연구·개발을 연구자 개인의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하다 보면 인력, 시간, 재료 등 모든 측면에서 낭비되는 자원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AI 자율실험실을 활성화하면 연구자는 반복적이거나 위험한 실험 수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결과 예측 및 분석 등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싼 AI 솔루션과 장비 도입에 투자를 망설였던 기업들도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AI를 이용해 해외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기술, 기업, 인재를 효과적으로 탐색하고 연결해주는 '테크GPT 플랫폼'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정부가 구상하는 테크GPT 플랫폼은 국내외 특허, 논문, 최신 기술 정보를 학습해 통합 검색에 도움을 주는 기술혁신 전용 대화형 AI 서비스다. 기술 정보를 넘어 해외의 인재와 기업 정보 탐색까지 연계 지원한다면 향후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기술협력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AI 기반으로 연구 행정 선진화를 시도한다. 정부 R&D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의 연구자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과제 기획, 연구비 정산 등에 AI를 적용해 도움을 주고, R&D 과제를 관리하는 전문기관도 유망기술 선정 및 과제 평가에 AI를 도입한다.
2000년대 초반 5%대였던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년이 지난 현재 2% 안팎으로 내려앉은 상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로 경제활력이 저하된 것이 대표적 원인인데, AI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활력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정부가 AI를 R&D와 산업기술 전반에 걸쳐 기술혁신의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도 AI가 잘 정착되고 펼쳐질 수 있도록 기반 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