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내세운 공약이었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그해 5월 이를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2년5개월이 다돼도록 지지부진하다. 산은 노조와 직원들이 반대한다지만 국정과제가 이처럼 흐지부지된 사례는 역대 정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노무현 정부때는 수도권에 있던 한전, 국민연금 등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옮겼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으로, 그 이행은 대통령의 의무다. 그리고 실제적 책임은 해당 공공기관의 장(長)에 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이 헛바퀴를 도는 것은 강석훈 회장이 윤 대통령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무능한 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부산 이전뿐 아니라 KDB생명과 HMM 매각도 하세월이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DB생명을 인수한 뒤 2014년부터 10년간 여섯 차례 매각 작업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산은이 KDB생명에 투입한 자금은 1조5000억원 가량에 달했다. 국내 최대 국적선사인 HMM 매각도 지난 2월 하림 측과 최종 협상에 실패한 후 오리무중이다. HMM 주가가 강세였을때 팔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부에 손실을 끼쳤다. KDB생명 지원과 HMM 매각 실패, 그리고 32.9%의 지분을 가진 한전의 적자로 재무 건전성이 크게 악화, 정부로부터 2조원을 출자받기도 했다. 역시 최고경영자(CEO)인 강 회장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강 회장은 경영혁신이나 구조조정에 대해선 한마디 벙긋없이 지난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첨단산업 지원을 명분으로 "20조원 정도 (정부의) 자본금 증액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또 정부에 손을 벌렸다.
산은은 개발연대 부족했던 정책자금을 조달, 공급하기 위해 1954년 세워진 국책은행이다. 하지만 민간 금융 부문이 커진 지금 비대한 조직과 방만한 경영으로 정책금융 역할만을 맡는 건 비효율의 극치다. 임직원 수는 지난 6월말 현재 3425명이며, 평균 연봉은 1억1300만원(2023년 기준)으로 금융 공기업 중 1위다. 연봉만 따져도 한해 인건비가 3900억원에 육박한다. 민간 기업이라면 서너개 부서면 충분할 일을 8본부·8지역본부·63부(실)의 거대 조직이 맡고 있다. 정책금융 역할이 빛을 바랜지 오랜 지금 비슷한 역할의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합병, 업무를 효율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다. 현재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기술보증기금,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35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산업은행이라고 못 내려갈 이유가 없다. 강 회장은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로 규정한 법을 고쳐야만 이전이 가능하다는 핑계 뒤에 숨어선 안된다. 민간 기업 CEO였다면 진즉 해임됐을 것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