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나요. 어렵고 딱딱한 증시·시황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왜?'하고 궁금했던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으로도 안된 것이 디딤펀드로…."
최근 25개 자산운용사가 동시에 출시한 공동 브랜드 디딤펀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업계 관계자는 여기서 말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생략된 말은 '되겠어요?' 였을 겁니다.
연금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지난해 7월 도입한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면서 정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디딤펀드라고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중된 퇴직연금 자산을 성공적으로 끌어올 수 있겠냐는 겁니다.
디딤펀드는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주도해 만든 연금 특화 자산배분펀드입니다. 원리금보장상품 대비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면서도 기존 실적배당형 상품보다는 안정적인 펀드를 공급해 원리금보장형(예적금) 상품과 실적배당형(주식과 채권형펀드) 상품 사이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해내겠다는 건데요.
주식 편입비율을 50% 미만으로 제한하고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94조3000억원으로, 400조원에 육박한 시장인데 이 중 90%에 가까운 자금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려있는 상황입니다.
디딤펀드는 이같이 은행 예적금 등에 묶인 퇴직연금을 금투업계로 가져오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야무진 계획과 달리 업계에서는 디딤펀드의 역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디딤펀드 상품이 예적금 금리 또는 물가상승률 플러스(+) 알파(α)를 목표로 운용하겠다고 밝히긴 했으나 퇴직연금 투자자들이 당장 디딤펀드로 이동할 만큼 메리트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겁니다.
25개 운용사가 동시에 상품을 내놓은 데다가, 기존 운용상품을 '택갈이'만 한 경우도 있고, 주식상품 비중이 50% 미만이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운용사별 상품 차별화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앞선 디폴트옵션 사례도 떠오릅니다. 원리금 보장 상품에 자금이 집중돼 연금 수익률이 낮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7월 디폴트옵션을 도입했지만,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 역시 당초 취지와는 달리 90%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쏠려있습니다.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체 디폴트옵션 적립금 30조5000억원 중 88% 가량인 27조원이 초저위험 상품으로 운용 중이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으로 포함한 것 자체가 문제의 시작점이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디폴트옵션 제도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결국 높은 운용 수익률이 확인돼야 하는데 적립금이 원리금보장상품에 쏠려 있으면 투자자 입장에서도 일반 은행 예금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으니까요.
미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은 애초에 원리금보장상품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원리금보장상품을 편입할 수 있게 한 일본은 디폴트옵션 도입 실패 사례로 남았고요.
일본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전인 2014년 96.1%였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율이 디폴트옵션을 도입 이후 2018년 76.3%, 그 다음해엔 76.0%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제도 도입이 무색해진 셈입니다.
이 같은 우려는 디폴트옵션 도입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당시 은행과 보험사들은 '투자자 선택권 보장'을 내세워 원리금보장형 포함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정부와 당국은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포함했고요.
현재 디폴트옵션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관계부처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개선 대책을 논의 중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원리금보장 상품이 디폴트옵션에서 배제되려면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만큼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디딤펀드가 은행 예적금보다 확실히 메리트 있는 수익률을 내 '디딤돌' 역할을 잘 해내고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에 기여하길 응원합니다. 꾸준히 성과가 이어지면 실적배당형상품에 대한 시장의 신뢰로 이어지는 날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