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11개월째 '내수부진' 진단
건축 침체 두드러져 감소폭 확대
LG전자 등 대기업 부진도 한몫

#세종시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A(50)씨는 추석 이후 문을 닫다시피 했다. 대출금을 겨우 갚아나가는 현실인데 폐업 비용이 500만원이나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인 B(45·서울시)씨는 최근 일거리가 없어 집에 있는 날이 더 많다. 아파도 병원 갈 형편이 안 돼 약으로 버틴다. 옷가지 하나 사본 지 언제인가 가물가물할 정도다.

최악의 내수 침체가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글로벌 경제 저성장 영향을 피할 순 없지만 한국경제가 '돈맥경화'를 앓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19 터널을 빠져오자마자 유례없는 내수 부진에 발목이 잡혔다. 소비자들은 고금리에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할 여력을 잃었다.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공제제도 '노란우산'의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 건수는 지난해 11만15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소득의 전기 대비 증가율은 1분기 2.0%에서 2분기 -3.1%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내수 부진의 심각성은 국책연구기관도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발표한 '경제 동향 10월호'에서 최근 한국 경제가 양호한 수출 흐름을 보이지만,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진단은 2023년 12월부터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앞서 KDI는 지난달 경제동향에서도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회복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이 다소 지연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또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며 이달과 비슷한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8월 전 산업생산은 건설업 위축으로 2.3%에서 1.1%로 증가폭이 줄었다. KDI는 특히 '건설투자'에 주목했다. 지난 8월 건설기성(불변)은 전년 동월 보다 9.0% 감소했다. 건설 부문의 침체가 두드러지며 감소폭이 전달(-5.2%)보다 확대됐다. 전월 대비로도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KDI는 "건설수주의 누적된 부진을 감안하면, 당분간 건설 투자가 내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건설업 부진 여파로 노동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8월 취업자 수는 전월보다 4만9000명 적은 12만3000명의 증가폭을 나타냈다. 건설업(-8만4000명)이 건설경기 악화로 위축된 가운데 제조업(-3만5000명)의 감소폭이 특히 컸다.

소비는 상품소비를 중심으로 미약한 흐름을 보였다. 8월 소매판매는 -1.3%로 전월(-2.2%)에 이어 감소세가 이어졌다. 상품소비는 고금리 등의 영향이 계속되면서 침체된 모습이다. 세부적으로는 승용차(-4.1%)를 비롯 가전제품(-4.4%), 통신기기 및 컴퓨터(-14.1%), 의복(-3.5%) 등 대부분 품목에서 부진했다. 가계 여윳돈이 부족한 탓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소매 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기준) 증가율은 작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 이는 이른바 '카드 대란'으로 내수 소비가 바닥을 친 2003년(-2.4%) 이후 가장 낮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 경기 판단(73→71)과 향후 경기 전망(81→79) 등 경기 관련 항목을 중심으로 전월(100.8)에 대비 소폭 줄어든 100.0을 기록했다. 금리가 내려가고, 수출에서 힘찼던 부분이 내수로 파급되면 내수 진작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믿었던 대기업도 '낙수효과'를 내는 대신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올려 지난 2분기 대비 매출은 6.6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2.84% 감소했다. 결국 경영진이 고개를 숙였다. LG전자도 영업이익이 751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20.9% 감소하는 등 주요 대기업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물류비 부담과 소비 위축 등의 영향으로 4분기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동지역 분쟁도 변수다. 최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습하고 이란 보복 계획을 언급하는 등 중동 지역의 갈등이 커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충돌이 격화되면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들어오는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고 홍해를 이용한 무역도 지장을 생긴다. 국제 유가가 오를 경우 최근 상승률이 1%대로 안정된 흐름의 소비자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의 비관론은 여전하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10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6.2로 2022년 4월 이후 31개월 연속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수와 더불어 대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경제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부진이 잘못 꺾이면 내년 회복 가능성도 떨어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리정책 변화를 검토하고, 규제 혁신 등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송신용기자 ssyso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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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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