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정형돈이 20년째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게 충격인 것은 많은 이들이 정형돈의 불안장애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 '무한도전'이 절정기를 구가할 때 정형돈이 불안장애 문제로 갑자기 하차했었다. 그후 복귀해 현재까지 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불안장애로 고통 받지는 않을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번에 정형돈은 자신의 불안장애가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연예인의 불안장애 치유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감 느끼게 한다.

정형돈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가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정형돈이다"라고 외치면서 그의 후드티를 잡아당겨서 그가 뒤로 넘어졌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가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안고 나갔는데 한 여성이 "어머 형돈 씨 애!"라고 하며 아기를 뺏어 갔다고 한다. 이런 식의 행동들이 그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과거 정형돈은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했었다. 그는 온라인 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무한도전' 초기에 안 웃긴다는 비난을 받은 것인데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반전돼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워낙 뜨거웠다. 시청자 구미에 맞으면 극렬한 찬사가 이어지다가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집단 공격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게 과열된 관심 속에 비난과 찬사가 교차하면서 사람들 입방아의 도마 위에 오르는 건 매우 부담스런 일이다. 결국 정형돈은 '무한도전' 복귀를 포기했다. 그러자 '무한도전'을 떠나기 위해 불안장애라는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한때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이 바로 공격 모드를 돌아선 것이다. 이런 분위기이니 정형돈이 '사람들이 나를 찌를 것 같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일반적으로 처해있는 상황이다. 특히 악플 문제가 날로 심각해진다. 스타라며 떠받들다가 태도 논란이라도 한번 터지면 바로 악플 사태가 벌어진다. 과거 한 여성 연예인은 영화 시사회 무대인사 때 잠시 짝다리 자세를 취했다는 이유로 악플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러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게 된다.

사생활 침해와 루머의 문제도 심각하다. 연예인의 사적인 부분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소비하는데 사실관계도 따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근거 없는 연예인 사생활 이야기를 퍼뜨리는 개인방송이 넘쳐난다. 밥 먹는 도중이나 그밖에 다양한 사적 상황에서 불쑥불쑥 아는 척하면서 여러 가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응대를 제대로 안 해주면 거만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에서 연예인의 속이 허물어져간다. 그 결과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수면장애 등이 연예계에 넘쳐나는 것이다. 약물에 손대기도 한다.

흔히들 이런 증상을 연예인 직업병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연예인인 이상 그런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연예인이라고 정신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이건 생명하고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더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결과 생명을 끊은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연예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예인을 인형이나 샌드백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악플을 던지고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루머를 소비한다. 사회생활하면서 쌓인 울분을 연예인 때리기로 풀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 멀쩡한 시민들까지도 연예인 악플 군단에 가세하곤 한다.



그런 악플 군단이 악인은 아니다. 악플러들을 직접 만나보면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라서 깜짝 놀란다고 한다. 직접 대면한 사람들에겐 모질게 못할 이들이 연예인에겐 거리낌 없이 악플 세례를 퍼붓는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연예인을 사람이 아닌 샌드백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자 연예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사라지면서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대중이 연예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연예인들이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고통을 호소해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악플 등 공격행위를 이어간다. 이러다간 피해자가 계속 양산될 것이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정신적 고통이 직업병이라고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 연예인도인권과 가족이 있는,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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