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장우진 기자
거세지는 경영권 분쟁
장형진 고문으로 대표되는 영풍이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가운데, 이들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 경영능력을 질타하며 "경영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고려아연이 2687억원, 영풍이 8338만원으로 고려아연이 3200배 이상 많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재무건전성 악화 등 위기에 처했다며, 그 원인을 모두 오너인 최 회장에게 떠넘겼다. 그러면서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임직원은 물론 현대차·한화·LG 등 FP(재무적투자자)와 더욱 각별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권과 소액주주에 이어 고려아연 임직원들도 영풍의 지분 공개매수에 '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영풍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풍·MBK "최윤범 체제 후 재무건전성 빨간불"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분 2.2%의 최윤범 회장 1명의 의사 결정에 따라 의혹이 많은 투자를 진행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선진 거버넌스 도입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또 "자사주는 소각돼야 마땅하지만 공시된 내용에는 소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자사주를 교환하면 1대주주, 소액주주도 아닌 단 1명(최윤범 회장)만 도움이 된다. 이 부분은 공개매수와 없이 소각을 선언해야 한다"고 최 회장을 압박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도 이날 "주요 주주는 주주로 남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 맡겨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새로운 세대를 열자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MBK에 요청해 최대주주 지위로 들어오도록 하고, 그 자리에서 고려아연 경영을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영풍·MBK 측은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의 근거로 고려아연의 재무건전성 악화와 각종 투자 의혹 등을 제시했다. 김 부회장은 "2019년 고려아연의 순현금 규모는 2조5000억원이었지만 올 6월말엔 6880억원으로 줄었다.
배당, 법인세, 자사주 매입 등을 감안하면 연말엔 마이너스 440억원의 순부채로 전환될 예정"이라며 "같은 기간 부채는 41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현금을 물쓰듯 하고 있는데 일반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일 "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노조가 19일 MBK파트너스 본사(광화문 D타워) 앞에서 현수막을 치고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반대하고 있다. 장우진 기자
◇불투명한 투자 과정 vs 악의적 의혹 불과
김 부회장은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관련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투자 의혹과 미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신생펀드에 90% 이상을 고려아연이 출자했다. 이사회도 거치지 않은 사안"이라며 "이후 해당 펀드는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에 연루됐다. 사측은 자산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통상 PE(사모펀드사)는 5~10년 투자금을 뺄 수 없다. 자산운용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그니오는 2022년 580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그니오 연간 매출은 29억원으로 202배 수준의 가격"이라며 "이사회에는 단 1장의 A4 보고서만 갖고 왔다. 실사를 안한 것인지, 속은 것인지, 알고도 그런 것인지 합리적 의심이 들어 회계장부열람을 통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이러한 영풍·MBK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출자와 SM엔터 시세 조정 의혹에 대해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관련 법령와 내규에 의해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쳤다. 블라인드 펀드는 성질상 해당 펀드가 어느 사업에 투자를 집행하는지 LP(재무적 투자자)가 관여할 수 없다"며 "SM엔터 투자 관련 시세조종 의혹 부분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당사에 대해서는 기소나 재판이 진행 중인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그니오 투자와 관련해서는 "투자 당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기업가치 보고서를 토대로 적정가치를 산정한 뒤 매도인과의 협상해 경영판단을 거쳐 거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시장에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사업환경 변화, 경영상 필요에 따라 투자계획이 일부 수정되거나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빈번한데, 구체적인 근거자료 없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악의적이고 허황된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주주 이어 노조도 고려아연 '손'
공개매수 여부를 놓고 양측이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치권, 지역사회, 소액주주에 이어 임직원들도 고려아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노조 조합원 70여명은 이날 서울 종로구 MBK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개매수 시도를 규탄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수호하고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고려아연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약탈적 공개매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50년 역사의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제련회사 고려아연이 기업사냥꾼 MBK에 회사를 빼앗길 엄청난 위협 앞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약탈적 공개매수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두겸 울산시장과 울산시의회는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최근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현대차, LG화학, 한화와 배터리 동맹을 통해 회사의 미래를 펼쳐가는 중으로 소액주주로서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려아연에 힘을 실어줬다.
김광일 부회장은 이러한 반대 여론에 대해 "공개매수 속성에 따른 소통 부족이라 생각한다"며 "울산시장에도 직·간접적으로 입장을 소개하고 면담을 요청하고 있고, 울산광역시의회도 만나 설명할 생각이다. 노조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