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계획의 수립
1991년 핵융합 연구 건의… 퇴짜 맞기도
4년 뒤 승인돼 2007년 'KSTAR' 완공
기업 중심 핵융합 연구로
기후위기·AI혁명 등에 전력수요 급증
미래에너지 위해 민간 주도 상용화 시급
"2040년까지 상용화해야 넷제로 기여"
'가교'로 시작해 독자 개발까지
기업·고객사에 솔루션·플랫폼 제공
독자 핵융합 상용로 개발·제작 목표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경수 인애이블퓨전 이사회 의장


"맨 땅에 헤딩."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40년이 넘는 연구 인생 동안 아무도 하지 않은 일만 쏙쏙 골라서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 안 된다고 말리면 가슴에 '용기(勇氣)'라는 연료가 가득 채워져 시작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핵융합 불모지나 다름 없던 대한민국에 핵융합을 하겠다고 큰 소리 치며 50년 계획을 만든 것에서 시작해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를 구축하고,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참가한 것도 모두 주위에서 말렸지만 그 때마다 과하게 발현된 용기로 도전해 현실로 만들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차관급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역임하고 정치에 입문한 데 이어 핵융합 스타트업 창업에도 도전했다.

이경수 인애이블퓨전 이사회 의장(전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핵융합 분야의 '살아 있는 레전드' 같은 존재다. 그로 인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이 땅에 '인공태양'의 불씨가 지펴졌고, 그 불씨는 KSTAR로 옮겨져 장작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의장은 KSTAR의 성공적 구축과 ITER 건립을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핵융합 분야의 '구루'로 여전히 현장에서 바쁘게 활약하고 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천재 과학자와 만나 핵융합 연구 '인연'

핵융합과의 첫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로 태양풍의 존재를 입증한 유진 파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의 지도를 받던 중 그의 추천으로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으로 옮겨 수소폭탄을 만든 마샬 로젠블루스 교수를 만났다.

이 의장은 "당시 핵융합 연구를 하기 위해 페르미 국립연구소가 있는 텍사스로 연구자들이 모여 들었고, 파커 교수의 추천으로 마샬 로젠블루스 교수의 지도를 받아 플라즈마물리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때부터 40년 넘게 핵융합 연구 인생을 살아 왔다"고 말했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핵융합연구장치 제작에 참여했다. 미 MIT로 옮겨 고자기장 토카막 장치 개발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핵융합의 미래 가능성과 잠재력을 봤다.

이후 1991년 한국에 돌아와 핵융합연구장치 구축을 포함한 '핵융합 상용화 50년 계획'을 직접 만들어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핵융합 연구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5년 계획이 대부분이던 당시에 50년 계획을 보여줬더니 과기부 관료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면서 "실무 선에서 비록 퇴짜 아닌 퇴짜를 받았지만, 핵융합을 전공한 정근모 과기부 장관의 지원에 힘입어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1995년 12월 26일 정부가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기본계획'을 승인했다. 중간에 IMF 위기로 정부 지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이후 2007년 독자 기술로 개발한 'KSTAR'가 완공돼 우리나라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빠른 상용화가 경쟁력 관건"…"탄소중립·미래 에너지 안보에 기여해야"

이 의장은 핵융합의 조속한 상용화를 통해 탄소중립과 미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청정에너지원인 핵융합의 경쟁력 원천은 민간 주도의 신속한 상용화에 달려 있다며 이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와 AI 혁명에 따라 급증하는 미래 전력 수요는 신속한 핵융합 상용화를 통해 담보할 수 있다"며 "그동안 공공영역에서 쌓아온 핵융합 연구성과를 민간이 이전받아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민간 주도의 핵융합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혁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발빠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50개 핵융합 분야 스타트업이 창업해 활동하고 있으며,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비롯해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핵융합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 의장은 "핵융합 생태계가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핵융합 상용화 목표 시점이 당초 2050년대에서 2040년대로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2050년 탄소중립 실현에 핵융합에너지가 기여하려면 최소 2040년대 전후로 상용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융합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기술혁신이 이어진다면 인류의 당면 과제인 '2050 넷제로(Net-Zero)' 실현에 핵융합에너지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의장은 내다봤다. 우리나라도 최근 핵융합 글로벌 상용화 선도국가 실현을 위한 '핵융합에너지 가속화 전략'을 마련, 정부 차원에서 핵융합 기술혁신, 산업화, 인프라 등에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1호 핵융합 스타트업' 창업자 변신…"'K-제조'에 AI·ICT 결합해 상용화 앞당길 것"

이 의장은 ITER 국제기구 부총장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마치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혁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핵융합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속속 창업에 뛰어 들고, 빅테크 CEO들이 이들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핵융합 상용화에 기여하기로 결심하고,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많은 나이에 창업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모두 만류하고 반대했다"면서 "하지만 한국의 우수한 핵융합 분야 제조 기술력에 AI와 ICT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융합하면 충분히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보고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며 40년 넘게 우정을 이어 오며, 다수의 기업 CEO를 역임하고 ICT에 해박한 최두환 전 포스코ICT 대표와 의기투합해 창업의 깃발을 들었다. 다행히도 핵융합 분야 거물들이 대거 든든한 우군이 돼 줬고, 핵융합 관련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지난 1월 국내 1호 핵융합 스타트업 '인애이블퓨전'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 의장은 이사회 의장과 CSO(최고전략책임자)를 맡아 대전 R&D센터를 총괄하며 기업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우리나라는 KSTAR와 ITER에 참여하면서 핵융합 핵심 부품과 기기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며 "우리 기업의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에 우리의 또다른 강점인 AI, ICT, 로봇공학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토털 솔루션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핵융합 상용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핵융합 상용화에 필요한 솔루션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부수를 걸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핵융합 분야 제조기업과 핵융합 상용화를 추진하는 글로벌 고객사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 현재 영국과 이탈리아 등과 핵융합로 관련 사업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장기적으로 독자 핵융합 상용로를 개발·제작하는 것이 목표다.



◇"'핵융합계의 웨스팅하우스이자 스페이스X'가 우리 롤모델"

이 의장이 지향하는 롤모델은 '핵융합 분야의 웨스팅하우스이자 스페이스X'다. 웨스팅하우스는 우리나라 고리 1호기를 비롯해 전 세계에 수많은 원자력발전소를 설계, 운영, 관리한 경험과 역량을 보유한 세계적인 원자력 종합 기업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 등 발사체 분야의 거대한 기술혁신을 통해 발사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사실상 전 세계 발사 서비스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그는 "웨스팅하우스는 전통적인 원자력 기업으로, 그들이 전 세계에 세운 원자력발전소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며 "인애이블퓨전은 웨스팅하우스처럼 전 세계의 핵융합발전소를 설계, 건설, 운영 등에 필요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발사체 분야의 기술혁신을 주도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스페이스X의 혁신 사례를 들며 이 의장은 핵융합 상용화는 우주보다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의 아폴로 계획으로 설립된 NASA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60년 넘게 축적해 온 기술, 인력, 인프라 등 수많은 리소스를 민간 기업이 산업화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결과 스페이스X와 같은 혁신형 우주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NASA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스페이스X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의장은 핵융합 상용화를 빠르게 실현하려면 국가 주도로 창출된 수많은 핵융합 R&D 성과와 방대한 데이터를 민간이 원활하게 이전·지원받아 상용화를 위한 기술혁신으로 이어지도록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핵융합 분야의 R&D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고, 데이터도 ITER 등을 통해 상당히 축적해 놓고 있습니다. 이제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상용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를 통해 대한민국 주도의 핵융합 공급망을 구축할 때입니다."

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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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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