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내엔 엔비디아의 적수가 없을 것입니다."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최근 대한상의 제주 포럼에 참석해 밝힌 말이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장을 선도하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지난 2014년 7월 주당 4.5달러에 불과했지만, 이달 22일 기준 주당 가격이 1118달러로 10년 새 300배 가까이 성장했다. 당시 1억원을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했다면 현재 300억원 가치로 불어나게 됐을 것이란 의미다.
그런 흐름에 맞춰 전 세계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동맹을 맺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만 TSMC와 국내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대표적 'AI 동맹' 기업으로 통한다.
◇엔비디아의 파운드리 반도체 파트너 TSMC
반도체 설계(팹리스) 세계 1위 회사인 엔비디아는 마찬가지로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협력을 매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계 미국인인 점 등을 언급하며 두 회사의 관계를 동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TSMC는 최신 GPU에 이어 대화형 인공지능(AI) '챗 GPT' 분야에서도 엔비디아와 손 잡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세계 2위 파운드리 회사인 삼성전자와의 동맹 관계는 이전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엔비디아는 2나노미터(nm) 반도체 개발을 위해 TSMC, ASML, 시놉시스 등과 협업을 예고하고 있다. ASML은 첨단 노광인 극자외선(EUV) 기술, 시놉시스는 전자설계자동화(EDA) 부문 선두주자다. EDA는 반도체 회로 및 설계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다.
이 과정에서 TSMC는 80조원 이상을 들여 엔비디아 납품을 위한 2nm 공장 4기를 짓기로 했다. 엔비디아의 미래 제품군도 TSMC가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앞서 엔비디아는 이미 메인 GPU 양산업체를 삼성전자에서 TSMC로 변경한 바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주요 고객이 경쟁사로 넘어가 아쉬운 결과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4nm 및 5nm 경쟁 초기에 삼성전자가 TSMC에 밀렸던 나비효과가 지속되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라며 "엔비디아, 퀄컴 등은 워낙 덩치가 커서 한 번 라인을 바꾸면 재차 변경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HBM3 기술력 입증…삼각동맹 합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고대역폭메모리(HBM3) 엔비디아 공급을 시작으로 엔비디아 AI 동맹에 합류했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TSMC가 파운드리를 맡는다면, SK하이닉스는 AI용 GPU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HBM3E를 생산하고 있다.
HBM은 DDR SDRAM과 같은 기존 메모리 기술과 비교해 훨씬 높은 데이터 전송률과 낮은 전력 소비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메모리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09년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연구했고, 2013년 세계 최초로 TSV 기반 1세대 HBM을 시장에 내놨다. 지난 2021년까지만 해도 HBM은 SK하이닉스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 영향에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68% 증가한 3조원에 달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오랜 HBM 시장 투자가 결실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동맹을 강화해 HBM 사업 비중을 대폭 상향시킬 계획이다. IBK투자증권 보고서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내년 연간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 올해 1분기 매출에서 HBM이 차지한 비중은 20% 수준이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현재 개발 중인 HBM4 공급을 통해 추후 엔비디아와의 동맹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9월 대만에서 열리는 반도체 종합전시 세미콘 타이완에서 '팀 엔비디아' 협력 강화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주선 SK하이닉스 사장이 세미콘 타이완 기조 연설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세미콘 타이완 기조연설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주선 SK하이닉스 사장은 기조연설 이후 TSMC 핵심 경영진과 대담하면서 차세대 HBM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엔비디아를 주축으로 SK하이닉스, TSMC로 이어지는 삼각 동맹은 가상화폐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AI 산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중국에 첨단 컴퓨팅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게 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고사양 GPU의 현지 판매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에 엔비디아는 대 중국용 저사양 GPU를 별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엔비디아 성장 맞춰 협력 강화 중인 국내 중소기업들
국내 중소기업들도 엔디비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이크래프트, 씨이랩, 제이씨현시스템, 아이티아이즈, 이수페타시스, MDS테크 등은 엔디비아와 협력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주요 중소기업이다.
아이크래프트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및 시스템 구축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다. 엔디비아 AI 장비를 고객사에 설치 및 유지 보수하고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씨이랩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 기술과 AI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AI 플랫폼 사업을 전개 중이다. 엔디비아의 소프트웨어 파트너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이씨현시스템은 엔디비아 GPU 탑재 그래픽 카드를 판매하는 파트너사다. 컴퓨터 관련 제품 및 보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아이티아이즈는 금융 서비스를 주요 사업으로 하며 엔디비아의 파트너사로서 금융권 IT Compliance 및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수페타시스는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엔디비아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다. 현재도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DS테크는 임베디드 시스템 토탈 솔루션 공급 및 AI 플랫폼 구축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엔디비아의 공식 파트너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들 엔디비아 협력 파트너사들의 역할은 엔디비아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각 기업의 독특한 분야에서 엔디비아의 기술을 활용해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