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납치 됐어."

지난 14일 오후 서울경찰청으로 대학생 딸을 둔 엄마의 신고가 접수됐다. 딸이 술 취한 남자의 돌에 머리를 맞고 강제로 차에 태워져 납치됐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딸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다. 관할인 수원중부경찰서에 연락해 딸의 대학과 주변을 수색했다. 경찰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딸의 안전을 우선 확보했다. 이어 보이스피싱범에게 금품을 들고 가던 아버지의 신변도 지켰다. 대표적인 보이스피싱 범죄 사례다.

보이스피싱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070'이 아니라 '010'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국제전화를 받지 않자 010으로 전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변작중계기'라는 기계로 번호를 바꾼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이런 기계를 만드는 조직을 적발했다. 조직 규모는 컸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조직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티 등이다. 수사단은 조직원 21명을 구속하고 재판에 보냈다.

조직원들은 서로 알지 못했다. 수당은 우편함·분전함 등 특정 장소에 두고 찾아가는 '던지기' 방식을 활용했다. 조직원들이 하나둘 검거되자, 윗선은 원룸 임차료를 조직원이 직접 납부 하도록 지시했다. 메뚜기처럼 한 달 간격으로 숙소와 중계소도 옮겼다. 치밀했다. 조직원들은 텔레그램 대화명을 수시로 바꿔가며 수사망을 피했다. 총책은 중국인이었다. 중국 현지 페이스북 등 인터넷을 통해 국내 조직원을 모집, 텔레그램으로 범행을 지시했다.

'고구마 줄기'처럼 엮인 네트워크는 몇차례 건너 범죄를 세탁하기 충분했다. 금융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째로 모방한 위장형 사기 앱은 혼란을 부추겼다. 금융·증권사의 명칭과 브랜드 로고를 교묘하게 변조한 위장 앱과 사이트는 총 159개. 앱에는 정상적인 금융정보와 비정상적인 정보가 혼재돼 있었다. 주식이나 비상장 코인의 투자 정보 제공을 빌미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돈을 떼 갔다.

사이버 보안 업체의 탐지망도 미꾸라지처럼 피해갔다. 위장수사나 함정수사 등 극단적인 방법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이다.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 내부 시스템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지명수배 정보를 확인해 유출한 경찰관 2명은 맥 빠지게 한다.

'공개수배 사건25시'. 어릴 적 즐겨봤던 TV프로그램이다. 방송된 사건이 정말 현실적인 일인지 의심하면서 봤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아저씨를 무턱대고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은 확실히 가질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3년간 총 160회 방송돼 498명을 공개수배 했다. 이중 250명은 검거됐다.

요즘 보이스피싱은 공개 수배 하자니 용의자 얼굴조차 모른다. 뛰는 범죄조직을 잡기 위해 수사당국이 날아야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범죄기업이 발견될 때마다 맞서는 당국의 수심은 깊어 보인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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