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기업들이 연말을 맞아 희망퇴직부터 회식비 삭감까지 비용절감 수단을 총동원하며 마른 수건을 짜고 있다.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불황 여파로 인한 실적 악화와 최대 수출처인 중국의 더딘 경기 회복 여파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석유화학업계, 고물가로 인한 소비위축과 코로나 이후 확산한 온라인 중심의 소비 패턴, 중국발 직구공습 등 시장환경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유통업계를 필두로 이같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언제 실적이 개선될지 가늠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사업계획을 구상해야 하는 기업들이 희망퇴직과 비용 절감 등 긴축경영 기조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실적부진 기업들은 2024년 갑진년을 앞두고 사업계획의 첫머리를 '인력운영 효율화'로 채우고 있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9% 감소한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3분기 경쟁사인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과 달리 실적이 악화한 상태다. LG화학은 직전 분기 대비 흑자전환을 했고, 롯데케미칼은 적자 폭을 줄였다. 한화솔루션도 직전 분기 대비 실적 개선을 이뤘다.
반면 에틸렌 등 기초석유화학 재료를 외부에서 조달해 쓰는 금호석유화학은 기초 유분 가격 인상 여파를 그대로 받았다. 수출 최대 시장인 중국의 더딘 경기 회복 역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4분기에는 생산 설비를 증설한 중국 석유화학 업체들을 중심으로 중국 내 석유화학 제품 생산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지난 3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이후 4년 만에 파주와 구미 공장의 만 40세 이상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앞서 올해 초에는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자율 휴직 신청을 받은 바 있다.
한화큐셀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국내 사업장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국내 태양광 시장의 모듈 판매량이 줄고 고금리 상황이 계속됨에 따라 인력을 줄여 생산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소비 위축에 유통·식품업계도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달 직급별 10년차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했고, 11번가도 만 3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롯데면세점과 GS리테일 역시 올해 하반기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지난 8월 매일유업에 이어 지난달 SPC 파리크라상이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방뇨 논란' 제품으로 매출이 급감한칭다오 맥주 수입사 비어케이도 지난달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내년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출장비 절감 지침도 속속 내려오고 있다. 작년 말부터 사실상 전사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삼성전자는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4'와 '갤럭시 언팩' 행사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출장자를 최소화하라는 지침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임원과 팀장의 복리후생비와 활동비 등의 예산을 각각 50%, 30% 삭감했다. LG화학은 전사 손익 상황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유지 중인 비용 절감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오션은 최근 지속가능한 원가 구조 구축을 위해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 추진 TF'를 신설했다. TF는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3억원의 포상금을 걸고 원가절감 아이디어 공모를 하기도했다. 효성은 내년 예산과 관련해 접대성 경비 등 제조·생산 부문과 거리가 있는 예산 지출을 줄이라는 지침을 각 계열사에 내렸다. 출장도 가능한 한 여러 건을 묶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출장지 인근 지역에 다른 사업 파트너가 있을 경우 추가로 접촉하고 돌아오는 식으로 교통비 등 경비를 줄이고 있다. 배터리업체인 SK온은 회식비를 줄였다. 최근 외부 식당 대신 사내 구성원 전용 카페테리아에서 '크로스캔미팅'(조직 간 합동회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비용을 기존의 3분의 1 이하로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임원 승진 규모도 예년에 비해 축소했다. 삼성전자의 2024년 임원 승진자는 총 143명(부사장 51명, 상무 77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4명)이었다. 2017년 5월(90명)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187명이 승진한 작년과 비교하면 23.5% 급감했다. 부사장 신규 승진자에게 제공되는 승용차는 현대차 제네시스의 경우 G90에서 G80으로 하향 조정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든 데스' 위험을 언급한 SK그룹의 경우 전체 신규 임원 숫자가 작년 145명에서 올해 82명으로 43.4% 급감했다. LG그룹의 전체 승진 규모는 139명으로, 지난해(160명)보다 13.1% 줄었다.재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변화하는 대외 여건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임원 승진자를 줄이고 필수 경상투자 외의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내년 경영 환경도 불확실한 만큼 당분간 긴축 경영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