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 박사, 1일 오후 6시53분 서울대병원서 노환으로 세상 떠나…향년 92세 하야 후 하와이 체류하던 86세 이승만 前대통령의 양자로 입적…당시 30세 양부 명예회복에 힘써…별세 두달 전엔 4·19 민주묘지 참배, 희생자에 사과
지난 9월1일, 생전의 이인수(가운데) 박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로서 처음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을 참배하고,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 혁명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이승만(1875~1965) 대한민국 초대~3대 대통령의 양자(養子)인 이인수 박사가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이인수 박사는 이날 오후 6시5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별세했다. 빈소는 2일부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발인은 11월4일 토요일 오전 10시로 예정됐다. 장지는 충북 국립괴산호국원이다. 문무일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장례 일정 공지에서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하오니 혜량하여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고인은 부인 조혜자 여사와 슬하에 두 아들 병구·병조씨를 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이에 체류하던 시기인 1961년 11월, 86세의 고령인 가운데 1931년생 이인수 박사를 양아들로 맞아들였다. 당시 전주이씨 문중의 결정이었다.
이 박사는 대학 졸업자이며, 공군 대위로 전역했다. 이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고려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미혼이며 가정교육이 바른 집안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해 입적했다. 양녕대군의 16대손인 이 전 대통령의 아들로서 계대가 맞는 17대손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양자로) '나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을 택하라'고 했지만 주변에서 '전주이씨 종중에서 그동안 잘 모셨더라면 어른의 말년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으로 같은 혈손들이 도와드릴 의무가 있다'고 해 결국 설득당했다"고 전한 바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이 박사는 독일 유학을 접고 양자 입적 제안을 수용했다고 한다. 고인은 "양주군 초대 교육감이었던 친부(이승용, 1904~1984)도 '정말 어려운 자리라 네 삶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지만 열심히 모셔라'라고 격려했다"고 회고했었다.
이 박사는 양자가 된 후 모두 세차례 하와이를 찾아 양부 이 전 대통령을 모셨다. 1961년 12월13일~1962년 3월 17일, 1964년 1월28일~4월 2일, 마지막으로 1965년 7월4일 마우나라니 요양병원으로 가서 7월19일 임종을 지켰다. 이후 이 박사는 평생을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힘썼다.
4·19 혁명 희생자들과 화해를 위해서도 지속해서 노력했고, 지난 9월엔 하야한 대통령의 아들로서 63년 만에 처음으로 4·19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당시 이 박사는 "오늘 저의 (희생자에 대한) 참배와 사과에 대해서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고인은 1968년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1970년 경희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법정대학장,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07년 건국 60년 기념사업회 준비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