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빛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시상식 올라가는 상상을 한번씩 하는데 생각만 해도 좋아요." 부상 투혼 끝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거머쥐며 한국 배드민턴 역사를 새로 쓴 안세영(21) 선수가 2년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 한 얘기다.
그러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천적'인 중국 천위페이를 8강전에서 만나 내리 두 게임을 내줬다. 2게임 막판에 발목을 다치고도 그를 추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날 경기로 안세영은 천위페이에게 5전 전패를 당했다. 안세영은 경기 후 눈물을 흘리며 "후회 없이 준비해서 이 정도 성과가 나왔으니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안세영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써온 훈련일지 마지막에 '나는 빛날 수 있어. 빛날 거야'라는 글귀를 자주 썼다. 그런 그녀는 항저우에서 빛나는 별이 됐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재회한 천위페이를 무릎 힘줄이 찢어지는 부상을 딛고 꺾었다. 경기의 진가는 점수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 같은 대결 끝에 3경기에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천위페이의 무릎을 꿇렸다.
그 며칠 전, 헝가리 출신 카탈린 카리코(68) 바이오엔텍 수석부사장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mRNA 백신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녀의 이야기도 세대와 분야를 달리하지만 비슷한 울림이 있다.
1955년, 전후 공산주의 헝가리에서 정육점 집 딸로 태어난 카리코 박사는 갓 스무살이 지난 1976년 처음 접한 mRNA에 꽂혀서 평생을 파고들었다. 1985년, 연구환경이 열악한 헝가리를 떠나 남편, 두살배기 딸과 단돈 150만원을 들고 미국행을 감행했지만 연구비도 연구논문도 제대로 없는 연구자를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mRNA 백신 연구에 전념했지만 수차례의 강등과 해고를 겪어야 했다. 힘들게 교수직을 얻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성과가 없는 mRNA 연구를 포기하지 않으면 교수직을 박탈하고 연봉도 삭감하겠다고 통보했지만 명예와 돈 대신 mRNA를 택했다.
mRNA에서 인류를 구할 희망을 본 그녀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과학계에 화내지 않았다. 암 투병을 겪으면서도 mRNA 연구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현실이 됐다. 그녀의 연구 덕분에 2019년 코로나19가 발발한 지 1년도 안돼 mRNA 백신이 상용화돼 수천만명의 목숨을 구했다.
냉소와 냉대 속에서 카리코 박사를 평생 잡아준 것은 16살 때 읽은 책에서 접한 글귀였다. 스트레스 연구를 개척해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같은 헝가리 출신 한스 셀리에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면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바뀔 수 있다'고 썼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생 연구한 셀리에 박사가 내린 결론은 '우리를 죽이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과학 꿈나무였던 카리코 박사는 그 글귀를 평생 가슴에서 지우지 않았다.
"내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인정을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카리코 박사는 "주목이나 축하를 받지 못해도, 남들이 아니라고 봤어도 나는 내가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분노를 할 필요가 없다. 그 분노는 당신을 독살시킬 뿐, 상대방은 기억조차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말고, 남이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승리한다는 것. 모든 스트레스를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낸 그녀는 "바꿀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가여워하지도 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라. 그러면 그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쉰살 가깝게 나이 차이가 나는 안세영과 카리코는 우리에게 같은 얘기를 해준다. 자신을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면 느리더라도 마침내 빛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뒤에는 지루한 실험, 셔틀콕과의 힘겨운 싸움에 매달리며 수십년의 낮밤을 보낸 집념과 끈기가 자리잡고 있다. ICT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