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사상자 5600여명에 달해
美, 동지중해에 항모전단 급파
"이란, 하마스 공격 개입" 보도에
이란 "팔, 스스로 결정한 것" 부인

지난 7일(현지시간)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양측 사망자가 사흘 만에 1200명에 달하는 등 사상자가 5600여명을 넘긴 가운데 이스라엘은 전쟁을 공식 선포하고,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1973년 시리아와 이집트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이후 50년 만에 '5차 중동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항모전단의 동지중해 이동을 발표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승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대리전의 공포 속에 유가가 급등했다"며 "이스라엘의 최근 상황이 당장 유가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이번 충돌이 미국과 이란을 끌어들여 더 파괴적인 대리전(proxy war)으로 번질 위험성이 있다"고 전했다.

사흘째로 접어든 9일 하마스와 이스라엘 방위군(IDF) 간의 교전은 더 격렬해지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 등 이스라엘 중심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을 감행했으며, 이스라엘은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 지구를 공습하는 한편 지상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영토에서 하마스 측 병력을 밀어내기 위한 교전을 지속 중이다. 이스라엘군은 9일 이스라엘 남부의 가자지구 주변 7∼8곳에서 하마스 무장대원과 교전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격을 벌인 하마스와 다른 무장세력 '이슬라믹 지하드'와 관련된 가자지구 내 표적 500여곳 이상에 대해 전투기·헬기와 포병 등을 동원해 공습과 포격을 가했다. 이를 통해 하마스 지휘부 7곳, 이슬라믹 지하드 지휘부 1곳을 타격했으며, "이들 테러조직의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군 당국은 밝혔다.

이스라엘군(IDF) 대변인은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에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는 계엄령 하에 있다. 수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했고 앞으로 수십만명까지 늘려 남부사령부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당국자들이 24∼48시간 안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전했다.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8일 하마스가 침투해 이스라엘인들을 억류했던 남부의 오파킴 마을을 찾아가 "(이스라엘군의 보복은) 앞으로 50년 간 기억될 것이며 그들(하마스)은 이런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갈란트 장관은 "전쟁의 규칙이 달라졌다. 가자 지구가 치를 대가는 무거운 것이며 몇 세대에 걸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내각은 이날8일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하마스에 대한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중대한 군사 행보에 나서게 됐다며 하마스의 군사 기반시설을 해체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악의 도시에서 하마스가 있는 모든 곳, 하마스가 숨어있는 모든 곳, 활동하는 모든 곳을 폐허로 만들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인명 피해는 급증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국민 7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200여명이 부상했으며, 부상자 중 다수가 위중한 상태라고 이스라엘군은 밝혔다.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축제 행사장 주변에서는 무려 260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조너선 콘리커스 중령은 한 번에 이처럼 많은 이스라엘 국민이 살해된 적은 이전에 없었다면서 "9·11 테러와 진주만 공습을 하나로 합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집계된 사망자는 413명이며, 이 가운데 아동과 청소년이 78명, 여성이 41명이라고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했다. 부상자 수도 급격하게 늘어 이날까지 이스라엘 2100명, 가자지구 2300명 등 양측 부상자 합계는 4400명에 달했다.

하마스와 별개로 이스라엘 공격에 참여한 또다른 무장조직 이슬라믹 지하드는 이스라엘 국민 등 130명 넘는 인질을 가자지구에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수십명도 사망·실종 상태이며, 인질엔 미국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엔 주민들의 피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8일) 오후 9시 현재 팔레스타인인 12만3538명이 이동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인구는 230만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일에 이어 8일에도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하마스 테러리스트에 의한 전례 없는 끔찍한 공격에 직면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에 대한 완전한 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의 동지중해로 이동시키는 등 항모전단을 이동 배치하고 F-35 등 역내 전투기 편대를 증강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항모전단은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과 순양함 노르망디함, 구축함인 토마스 허드너함, 매미지함, 카니함, 루스벨트함 등으로 구성됐다. 국방부는 또 F-35, F-15, F-16, A-10 등 역내에 전투기 편대를 증강하기 위한 조치도 취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에 제동을 걸기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은 현재로서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자지구 남부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가 중재역을 자처하고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가자지구 긴장 고조 사태에 관해 긴급 논의를 했으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천발 로켓 공격에 아이언돔 무용지물이스라엘이 자랑해온 철통 방공망 '아이언 돔'(Iron Dome)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스라엘 방어 시스템의 핵심 중 하나인 '아이언 돔'은 가자 지구에서 발사되는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도록 설계돼 있다. 2006년 레바논의 무장 세력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수천발의 로켓을 발사해 막대한 피해가 나자 '교훈'을 얻어 새로운 미사일 방어 시스템 필요성을 깨달은 게 배경이다.

2011년 3월 가자 지구에서 약 40㎞ 떨어진 베르셰바 지역에 처음 설치돼 가동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2021년 기준 전국에 10개의 포대를 배치했으며, 각 포대에는 20발의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3∼4대의 발사대가 설치돼 있다. 각 포대에는 적의 포격을 감지하고 식별하는 레이더가 장착돼 있고, 이 정보는 통제 센터로 전송돼 궤적을 분석하고 충돌 지점을 계산한다. 이후 적의 로켓이 민간인이나 인프라를 타결할 확률을 계산한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연구 책임자인 마크 헤커는 "로켓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떨어질 게 확실하면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아이언 돔을 설계한 업체에 따르면 아이언 돔의 요격률은 평균 90%다. 지난 5월 이스라엘군은 아이언 돔의 요격률이 95.6%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철통 방어를 자랑하는 아이언 돔도 수천발의 로켓이 한꺼번에 쏟아진 이번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약 5000발의 로켓을 발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커는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방어 시스템이 실패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많은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포화 상태가 아이언 돔의 방어 실패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이 많을수록 방공망이 뚫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하마스 공격의 피해가 컸던 데에는 이스라엘 정보 참패도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현지 일간 하레츠를 인용해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지난주 하마스가 전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아이언 돔'(Iron Dome)이 로켓의 '소나기 기습공격'에 허점을 드러내면서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 장사정포 대응문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장사정포는 이보다 많은 시간당 최대 1만6000발의 포탄 및 로켓탄을 수도권을 향해 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 "이란, 대규모 공습 지원, 지난주 승인"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에 기습적으로 시작된 하마스의 이번 공습을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이 지원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이스라엘 공격 계획에 이란 안보 당국자들이 도움을 줬고 지난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이 지난 8월부터 하마스와 협력하며 지상과 해상, 공중으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방안을 고안했고, 이란혁명수비대와 하마스·헤즈볼라 등 4개 무장단체가 참석한 여러 차례 베이루트 회의에서 세부사항이 개선됐다고 한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해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다면서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 전사들과 함께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변함없이 확고한 지지를 유지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돼 있지 않으며, 이건 순전히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에 자금과 무기 등을 지원해 왔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에는 직접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에 직접 개입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란이 이번 공격을 지시했거나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지만, 이란이 오랜 기간 하마스를 지원해왔다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 교섭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공포에 질린 피난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피란을 떠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까지 팔레스타인인 12만3538명이 가자지구에서 대피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EPA 연합뉴스]
공포에 질린 피난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피란을 떠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까지 팔레스타인인 12만3538명이 가자지구에서 대피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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