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정부 재정만능주의 배격 보조금 등 4조 삭감 대신 사회복지 예산 8.7% 확대 "경기 부양 위한 마중물과 新성장동력 투자 확대해야"
전문가들, 尹 긴축 예산 평가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긴축 및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춘 예산 승부수를 띄웠다. 선거용 예산과 보조금, 불요불급한 R&D 예산을 대폭 줄이는 대신 사회적 약자 예산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정 건전성을 위한 긴축 예산은 필요하지만 어려운 경제를 살리려면 일정한 수준의 마중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건전재정을 염두에 두면서 여러 재정지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내년도 예산 증가율을 0%로 동결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밝혔다. 다만 예산을 동결할 경우 민생이나 국민 안전, 재난 안전 등을 담보할 수 없어 역대 최저 수준인 2.8%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내년도 예산 증가율 2.8%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지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올해 예산 총지출이 전년 대비 5.1% 늘어난 것과 비교해서도 절반 수준으로 증가율을 억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2년에는 7~9% 증가율이 이어졌다.
다만 올해 대규모 세수펑크로 편성된 예산 상당 부분이 '불용'될 것으로 전망돼, 결산 기준으로는 7~8% 증가율을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반기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39조7000억원 줄었고, 진도율은 44.6%에 그쳤다. 당초 국세수입 목표치였던 400조5000억원에서 연말까지 50조원가량의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나라빚을 늘리지 않겠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는 만큼, 모자란 세수를 감당하기 위해 기편성한 예산을 지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추 부총리는 "지출 증가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재정의 역할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타당성과 효과성이 없는 사업은 단호히 폐지·삭감하는 재정 정상화를 함께 추진했다"면서 "건전재정을 하면서도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재정을 적극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고, 사회복지 분야 예산을 올해 대비 8.7%나 늘렸다"고 설명했다.
재정 구조조정 규모는 약 23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예산 규모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만연한 낭비와 부정수급, 부당 사용 등 재정 누수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차단했다는 것이다.
특히 R&D와 보조금 분야가 도마위에 올랐다. R&D 예산 사업에서 7조원 정도가 줄었는데, 다른 분야로 옮겨진 3조원 정도를 제외하면 순수 삭감 규모는 4조원가량이다.
기재부는 "나눠먹기·관행적 지원 사업 등 비효율적인 R&D는 구조조정하고, 도전적·성과창출형 R&D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정수급 논란이 불거진 보조금에서도 4조원에 달하는 삭감이 단행됐다. 보조금 예산은 2018년 66조9000억원에서 2022년 102조3000억원으로 4년간 50% 넘게 증가했다.
기재부는 이번 예산 편성에서 40개 이상의 대규모 사업을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권 카르텔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긴축 예산으로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까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을 긴축할 때는 민간 분야가 활황이거나 과열됐다는 판단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현재 소비나 투자, 수출 등 여러 측면에서 아직 확연한 반등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글로벌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시기에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특히 '이권 카르텔' 논란이 있던 보조금 등 예산을 줄여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미래 성장 동력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과감한 투자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 증가율이 2.8%라고 하지만 고정비 성격의 예산 지출이 물가상승 등에 따라 인상된 것을 고려하면 임의성 지출은 대부분 상당폭 삭감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선거를 앞두고 긴축 기조를 지켜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담함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통합재정수지나 관리재정수지 증가를 보면 확장적으로 보이나 재정지출 증가율은 상당히 억제한 모습이 보인다"며 "경제 상황을 고려해 예산 증가율을 조금 더 높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