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순례자들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에서 연례 성지순례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무슬림 순례자들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에서 연례 성지순례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중동 정세가 급변하며 무슬림 최대 행사인 메카 성지순례(Hajj, 하지) 행에 직항편을 기대했던 이스라엘 무슬림들이 올해도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직항편 논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880만 이스라엘 인구 가운데 무슬림은 약 155만명으로 18%에 이릅니다. 이들이 바로 이웃에 있는 사우디로 성지 순례를 떠나려면 직항이 없어 제3국을 경유해야 합니다.

로이터와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직항 편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재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가 임박했다는 전망을 일축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0년 걸프만 이웃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는 데에 이의를 제기한 바 없습니다.

이번 직항 편 논의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사우디 모두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강경파 시오니스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하면서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마을 조성을 강행하는 정책을 펼쳐 아랍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영향이 큽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존중하고 두 국가체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성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번 미국의 직항 편 중재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를 완화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는 것을 막아보려는 셈법을 갖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립을 지키는 등 미국의 노선과 다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중동정책 아지트 역할을 해왔습니다. 미군도 주둔 중입니다. 100년 전 정통성이 불안전한 사우드 왕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을 세울 때 사우드왕가는 미국 달러에 의존한 석유수출과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 정권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MBS) 현 왕세자의 중립적 노선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사우디는 숙적이라던 이란과 최근 극적 화해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란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미국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MBS는 미국의 또 다른 골칫거리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난달 제다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초청해 회담을 갖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선 어이없는 사우디의 일탈인 셈이지요.

미국과 사우디 간 이상 조짐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사우디는 현재 브릭스(BRICS) 가입을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이웃 아프리카 무슬림 맹주 이집트는 최근 가입 신청을 낸 상태입니다. 나아가 사우디는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석유수출 대금 중 일부를 위안화로 받으면서 '페트로 달러'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브릭스가 오는 8월 말 회원간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가운데 만약 사우디가 브릭스에 가입하게 되면 달러 패권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브릭스는 현재 금을 결제 수단으로 삼을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동맹인 이스라엘을 이용해 사우디를 잡아두려고 하는 데는 이러한 중동 정세의 급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계기로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작항 편을 관철시키려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래저래 이스라엘 무슬림들은 올해도 하지 순례를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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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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