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장 명의 이례적 입장 발표 "해당 판결·주심 대법관에 과도한 비난 깊은 우려" "잘못된 주장,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주심 맡은 노정희 대법관에 대한 비판, '과도하다' 판단
김명수(오른쪽) 대법원장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불법 파업에 따른 노동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정·재계의 비판이 이어지자, 대법원이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판결이 나온 지 나흘 만의 일이다. 대법원이 개별 판결에 대한 비판적 반응에 대해 "부당한 압력이 될 수 있다"며 입장문을 낸 건 매우 이례적이다.
대법원은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판결에 대해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법원 또한 이를 귀담아들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판결 취지가 오해될 수 있게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은 물론 1, 2심 판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잘못된 주장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근거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대법원은 판결 내용과 쟁점을 자세히 설명하며, 정재계의 비판을 반박하는 A4용지 4장짜리 보도자료도 냈다.
자료에는 "이번 판결로 인해 기업이 개별 노조원들별로 개인들이 끼친 손해를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의 입증책임은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손해배상청구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개인별로 손해를 입증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책임을 행위자가 다 같이 부담하는 민법 760조 원칙을 대법원이 정면으로 어겼다는 비판에 대해선 "공동 배상책임 원칙은 유지하고 책임의 비율만 노조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과거 사용자와 근로자, 회사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 사이에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을 다르게 인정한 판례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도 위 기존 판결들에서 인정한 '책임 제한 비율 개별화' 법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개별 판결에 대해 직접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정치권 등 사회 각계에서 개별 판결을 비판하더라도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입장 표명은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판단이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노 대법관이 주심을, 오석준 대법관이 재판장을 맡아 대법원 소부 재판부에서 심리했다. 이미 1·2심에서 노조 측 대리인이 주장했던 쟁점을 중심으로 심리가 이뤄졌고, 기존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심리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현대차가 노동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하면서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책임의 정도는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여당과 재계에선 판결 취지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과 노동계가 추진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 목적과 닮았다는 점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을 한 것이라며 "입법부 차원에서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