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 가격 인하를 권고했다. 추 부총리는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에 (기업들이)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면을 만들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재료인 밀 가격이 내린 만큼 최근 올렸던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다. 다만 추 부총리는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 이 문제는 소비자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총리가 정조준해 '가격 인하'를 주문하니 라면업계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원가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제 밀 가격이 최근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평년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인 탓이다. 라면의 또 다른 원자재 중 하나인 전분 가격과 물류비의 증가도 문제다. 라면업계는 아직까진 정부로부터 공식 요청을 받은 것은 없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여러모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치솟는 생활물가를 잡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시장 개입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장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생산원가가 버젓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가격을 조정하면 시장 왜곡을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례들을 지금껏 많이 보아왔다. 전기·가스 요금이 대표적일 것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에너지 가격을 꽁꽁 묶은 결과 후폭풍을 고스란히 현 정부가 맞고 있는 것을 보면 비시장적 접근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시장경제'를 핵심 가치로 내걸었다.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이런 가치와도 어긋난다. 물가를 관리한다면서 시장 자율을 해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힘들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고물가를 잡으려면 가격통제의 유혹에서 벗어나 경쟁 촉진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부당한 담합이나 편법적 가격 인상 등을 막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