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6일 전기요금과 TV수신료의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통령실의 관계법령 개정 권고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1994년 이후 30년 동안 지속된 전기요금에 TV 수신료 2500원을 합산해 부과하던 관행에 큰 변화가 생긴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KBS 재원의 급감으로 이어져 현재 KBS 조직과 기능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공영방송 기능과 역할, 재원 구조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실의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의 근거는 여론이다. 대통령실이 지난 3월 '국민제안 홈페이지'(epeople.go.kr)를 통해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결과, 참여자의 96.5%가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 특히 수신료 폐지 의견도 절반을 넘었다. 많은 국민들은 "KBS를 보지 않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넷플릭스를 보기위해 월 1만3500원은 내지만 KBS를 보기위해 2500원은 내기 싫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TV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TV를 보유하면 내는 특별부담금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시청한 대가로 내는 '시청료'로 여기고 있다. 이런 인식에는 공영방송다움이 사라진 KBS에 대한 실망감이 그대로 담겨 있다. 다른 상업방송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KBS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라고 말하지만, 시청자들은 화재나 홍수, 태풍 등 재난이 발생해도 다른 방송에서 KBS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그 효용을 이미 잃은 것이다.
국민의 실망감에는 KBS의 지나친 정파성도 한몫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KBS 보도의 진보 편향은 심화되었다. 전체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특정 정파 입장을 옹호하는 반쪽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국민 제안에도 "좌편향 왜곡방송"이라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실제 KBS 1라디오의 주요 프로그램인 '주진우 라이브', 최경영의 '최강시사' 진행자는 각각 '나꼼수'(나는 꼼수다)와 '뉴스파타' 출신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친민주당 성향을 지나치게 드러내 수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바람직한 공영방송의 모델이나 공영방송의 재원 방안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 종착점은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공영방송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진행되면 KBS의 TV수신료 수입은 2022년 6274억원의 30%(1882억원)~50%(3137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지상파 TV채널 2개를 비롯, 모두 21개 채널을 가진 지금의 KBS 조직을 유지하기 힘들다. 결국 공익성이 큰 채널을 남기고, 상대적으로 공익성이 적은 조직과 기구는 축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채널로 판정되면, EBS와 함께 해당 채널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 방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영합리화와 함께 정치적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KBS 자체 노력도 필요하다.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를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음모', '공영방송 길들이기' 등으로만 생각하면, 공영방송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김의철 KBS 사장이 밝혔듯이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사장이 물러나면 된다.
하지만 사장이 교체된다고 해서 방송의 공영성이 갑자기 회복되고 정치적 편향성이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다른 정파성으로 잠시 가려질 뿐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영방송의 편향성과 지배구조, 사장 선임 문제는 반복해서 불거져왔다.
다채널시대를 맞아 TV수신료 폐지 혹은 인하가 세계적 추세다. 영국 BBC는 2027년 수신료 폐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본 NHK는 수신료 인하를 결정했다.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TV 수신료 폐지를 결정했다. 그렇다고 수신료 폐지가 곧바로 공영방송 지원에 대한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는 수신료 대신 월 구독료 징수, 정부 보조금 지급, 일부 채널 민영화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민여론은 TV수신료 분리 징수를 반기고 있다. 이는 월 2500원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도 아니다. 한마디로 공영방송 KBS에 대한 실망감이다. 그렇기에 TV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는 KBS의 정치적 편향성과 상업성을 극복하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 개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