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파탄난 유럽 'PIGS'…좌파 포퓰리즘 버리고 우향우 이탈리아,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유럽에서 우파 정당이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고 있다. 선심성 공약과 무분별한 복지 정책 등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돼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라는 치욕적 이름까지 들어야 했던 남유럽 국가에서 국민들이 좌파 포퓰리즘 대신 경제 개혁의 기치를 든 우파 바람이 불고 있다. 스페인 지방선거에선 중도 우파와 극우 정당이 연합한 야당이 중도좌파인 여당을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방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7월 조기총선을 선언했다.
28일(현지시간) AP·AFP와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과 극우 야당 복스(Vox) 연합이 집권당인 사회노동당(PSOE·이하 사회당)을 꺾었다.
이번 선거는 전국 17개 자치주 중 12곳에서 8131개 시·군 단체장, 지방의원, 광역 단체장 등을 뽑기 위한 것이었다. 투표율은 63.9%로 2019년 지방선거 때보다 소폭 낮아졌다.
대부분 지역에서 개표가 마무리된 가운데 광역 자치단체 12곳 중 3곳에서만 사회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나머지 9개 지역은 국민당과 복스 연합이 우위를 점했다.
국민당은 발렌시아와 아라곤, 라리호아 등 이전에 사회당이 차지했던 광역 지자체 6곳을 빼앗아 오며 승리를 챙겼다.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에서는 국민당의 강경파 지도자인 이사벨 디아즈 아유소 현 주지사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에 올랐고 같은 당의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스 알메이다 마드리드 시장도 재선에 성공했다.
극우정당 복스도 지방의원 점유율을 기존의 두배 이상인 7.2%로 키웠다. 이에 따라 국민당이 단독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복스 측 지방의원의 표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AP는 전했다.
반면 직전 지방선거에서 12개 광역 지방정부 가운데 10곳을 휩쓸었던 사회당은 대부분의 지역을 야당에 내주게 됐다. 특히 '텃밭'으로 여겨지던 서남부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을 잃은 것이 컸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집권당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선거 다음날인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7월 23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 원래 스페인 총선은 올해 연말로 예정돼 있었다.
산체스 총리는 "어제 치러진 선거는 비록 지방선거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이것이 총리이자 사회당의 대표로서 내가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산체스 총리 집권 이후 스페인 경제가 예상보다 순항했음에도 여당인 사회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했으며 사회당의 연정 파트너인 극좌 정당 포데모스연합(UP)이 부진했던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총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도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6개월 뒤 실시되는 총선에서도 승리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로이터도 국민당이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총선에서 사회당이 이끄는 좌파 연정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다만 국민당이 이끄는 우파는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를 제외하면 뚜렷하게 과반을 차지한 지역이 거의 없었다. 총득표율에서는 국민당이 31.52%로 사회당(28.11%)을 소폭 앞섰다.
카를로스 3세 대학 정치학과의 이그나시오 후라도 교수는 "우파 진영이 확장되기는 했지만 극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다. 다만 무게중심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기에는 충분한 결과"라고 말했다.
유럽은 과거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좌파 정치인들이 득세했지만 우파 정당들이 연이어 집권함에 따라 이런 흐름은 퇴색하고 있다. 유럽연합 폴리티컬 바로미터에 따르면 올해 기준 유럽 주요 28개국 중 우파 성향을 띠는 국가는 22개(78.5%)에 달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유럽 국가들의 우향우 추세가 두드러졌다. 좌파·우파 성향을 3~7점으로, 중립 성향을 5점으로 수치화한 이 지표에 따르면 2019년 6점을 넘어서는 우파 성향 국가는 단 한 곳이었던 반면, 올해 기준으로 6점을 넘어선 나라는 6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우파 정권은 복지정책을 남발하던 좌파 정부와 달리 고강도 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21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우파 집권당인 신민주주의당은 2위를 기록한 급진좌파연합을 20%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며 압승을 거뒀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부도에까지 몰렸던 그리스 국민이 최근 4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친기업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일궈낸 집권당에 대승을 안겼다는 분석이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