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 말 제주 고을에는 이상한 풍속이 있었다. 15세 이상 남자아이는 해마다 콩 한 섬을 바치고 관아의 서리(아전) 수백 명은 해마다 말 1필씩 바치는 풍속이다. 제주에 파견된 부사(府使)·판관(判官)은 제주도민들이 바친 콩과 말을 나눠 가졌다. 이런 이유로 제주에 파견된 지방관은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뇌물을 받다가 조정에 발각돼 파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김지석은 달랐다. 그는 제주에 부임하자마자 콩·말의 공납을 모두 면제시키고, 서리도 청렴한 사람으로 뽑았다. 제주도의 정사가 물처럼 깨끗해져서 제주도민들이 진심으로 감복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김지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윤승해는 음서(5품 이상 관료 자제를 시험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를 통해 지수주사판관(知水州事判官)이 됐다. 지금의 수원시인 수주(水州)는 풍속이 후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의 지방관으로 파견되길 희망했다. 정사도 편리한 방법으로 처리했고, 하급관리인 서리도 느슨하고 해이했고 질서가 없었다. 윤승해가 마음만 먹으면 특별한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관행적으로 얼마든지 재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부임하자마자 법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했다. 아전들 역시 그런 윤승해가 두려워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윤승해의 이런 행적은 훗날 큰 평가를 받았다. 국왕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수주에 간관을 파견해 역대 수령의 정치 성적을 알아봤는데, 윤승해가 단연 최고였다. 간관 송단은 국왕에게 "윤공의 끼친 자애가 지금도 백성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라고 전했다.
현재 각 정당의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는 말 그대로 '쩐당대회'다. 후보 등록을 위해 당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기탁금을 내야하고, 선거를 치르기 위해 1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해야 한다.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 메시지 비용이나 캠프 사무실 임차료를 감안하면 사비까지 동원해야 한다. 전국 순회 경비, 숙박 유세단 경비, 대의원 식사비용 등 모든 게 돈이다. 수십 년간 민주당 소속이었던 한 보좌진은 "전당대회에서 돈을 안 돌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까지 했다.
송 전 대표는 고려시대 관료인 김지석·윤승해와 달리 '나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검찰에 따르면,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은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회의원 10여명을 포함해 전국대의원, 지역본부장 등 70여명에게 모두 9400만원의 현찰을 뿌렸다는 정황이 나왔다.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에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송 전 대표는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24일 오후 귀국길에도 "인천이 너무 좋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대한민국이 최고인 것 같다. 제 아내와 딸, 강아지가 보고 싶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국민들은 이런 송 전 대표를 어떻게 볼까. 고려시대 백성들이 김지석과 윤승해를 보던 존경의 시선과는 달리 의심의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다.
다행이 검찰 조사에는 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선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어떻게 조성되고 전달됐는지에 대해 지금처럼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진실을 소상히 밝히길 바란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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