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민생·국익에 "여야가 없다"는 기만 정당 설전 넘어 사회 곳곳서 진영대립 검수완박 본안회피 두얼굴 판결한 헌재 정권잃자 55용사 추념 모른체한 1당 고갈우려 연금 "더주라"며 싸운 자문위 개딸 보수탓, 反日선전도 딴세상 수준
유남석(오른쪽) 헌법재판소장과 이선애 헌법재판관 등이 지난 3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에 입장하고 있다.<공동취재·연합뉴스>
정치권의 클리셰 중 하나로 "~~에 여야는 없다", 나아가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국가안보, 민생경제, 국익과 외교에 가장 많이 쓰이고 사법적 판단이 해당되기도 한다. 허나 시쳇말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매사 이런 문제마다 여야로 갈라서 온 게 정치 현실이다. 양 진영 정당이 상대방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으려, 초반 기선을 제압하려 쓰는 레토릭으로 이해가 돼왔다. 그런데 갈수록 일말의 '여야가 없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모습으로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 정치권 내 입씨름을 넘어, '이렇게 사회·국론이 철저히 반반으로 쪼개질 수 있나' 싶게 곳곳서 터져나왔다. 그것도 고작 열흘 안팎 단기간이다. 정치기득권이 노동자와 착취자, 빈자·부자, 유주택자·무주택자, 잠재적 성범죄자와 피해자, 전쟁과 평화, '적폐·토착왜구'와 자칭 '정의의 촛불'로 국민을 갈라치던 근(近)과거엔 교묘하게 명분·논리를 축적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요즘은 '혐오' 유발에 의존하고, '상대를 꺾을 수만 있다면' 이치·질서·일관성 아무래도 좋다는 행태뿐이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더불어민주당이 정권 이양 직전 단독 국회 의결·공포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 권한쟁의심판 청구소송 결론을 내렸지만 분열만 재생산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진보성향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5명과 보수·중도성향 4명이 건건이 갈라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민주당 꼼수 탈당 무소속 위원을 동원한 안건조정위·전체회의 날치기로 표결권이 침해됐다는 국민의힘 법사위원들 청구에 손은 들었지만, 개정법령은 유효하다는 '두얼굴의 판결'이 나왔다.
합치된 의견은 없이, 9명 중 5명 '다수 의견'이 재판부 입장으로 치환된 결과다. 진보 측 이미선 재판관이 법사위 의결 과정 위법에 유일하게 손을 든 것을 제외하면, △법사위원장의 가결·선포행위 무효확인 △국회의장의 가결·선포행위의 국민의힘 법사위원 권한침해나 무효확인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진보 측 '전부 기각파' 4명과 이미선 재판관이 5명으로 다수를 차지해서다. 이 중 법사위원장 가결선포행위 무효확인청구 "이유 없음" 판단은 다수의견이 된 권한침해부터 "인정되지 않으므로"라고 전제했다.
지난 2022년 3·9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상임고문이 SNS 메시지로 자·타칭 "개딸" 팬들과 나눈 대화 캡처사진 일부가 온라인커뮤니티 등에 회자됐다.
'법사위에서 실질적인 조정심사·토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 국회법 위반'이란 권한침해 공통의견을 그 다음 판단에선 다수의견 5명 중 4명이 부정했다. 헌재가 OX퀴즈, '과반 땅따먹기' 놀이장인가. 한동훈 법무장관과 검사들이 청구한 권한쟁의도 진보 측 '전부 각하' 5명과 '전부 인용' 4명으로 거듭 갈라졌다. 다수의견은 헌법상 영장청구는 검사 담당이어도 수사권 침해될 주체가 없다며 본안 판단을 비껴갔다. 만장일치로 사상 첫 대통령 탄핵할 땐 '국론분열 종식'을 들던 헌재가 이번엔 정반대 의지를 지녔나 했다.
안보·보훈마저도 반으로 찢어졌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은 제8회 서해수호의 날인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오늘 서해수호의 날 바쁘신 민생행보 일정에도 잊지않고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화환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정부 기념식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불참하고, 대신 자리한 조화(弔花)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군통수권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당대표를 대리한다며 국회 국방위 야당 간사가 참석했을 뿐이다.
지난 3월24일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제8회 서해수호의 날' 정부 기념식에 불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낸 조화 사진을 공개했다(왼쪽). 같은날 윤석열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시작하기 전, 서해수호 55용사의 이름을 한명씩 모두 부르는 '롤 콜'을 하기에 앞서 감정에 북받친 모습을 보였다.<최원일 전 천안함장 페이스북·연합뉴스 사진 갈무리>
북한군이 일으킨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도발, 연평도 포격전 계기로 숨진 서해 55용사 추모현장에서 '야당이 된' 민주당은 썰물 빠지듯 스스로 존재감을 지웠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5년 중 공교롭게도 큰 선거를 앞둔 2020·2021년 두해 기념식만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5용사를 '롤 콜'하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던 그날 이재명 대표는 울산 현장최고위에서 반일(反日) 메시지를 앞세운 뒤, "사망한" 영웅들을 기린다며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라고 '평화' 훈수를 뒀다.
국민의 미래를 좌우할 연금개혁도 이념적 간극에 여태 '빈손'이다. 지난 29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자문위는 넉달간 개혁안 초안 도출은 실패한 채 그간 논의 내용을 정리만 한 경과보고서를 제출했다. 특위 여당 간사(강기윤 국민의힘 의원)가 "저는 (연금개혁) 안 하고 싶다. 그런데 이건 대통령의 공약 사업"이라고 돌출발언하고, 민주당 위원들은 스스로 특위 무용론을 제기하며 보건복지부에 개혁안 마련을 떠넘기는 '유사 협치'를 했다. 애초 자문위 전문가들부터 진영대결 수준으로 찢어져왔으니 벌어진 촌극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가입상한연령·수급개시연령 상향이 필요하다는 방향만 제시했고 소득대체율 등에서 대치하며 구체적인 그림조차 못 그렸다. 일찍이 국민연금 기금이 '2040년 적자 전환-2055년 고갈'된다는 위기감에서 개혁론이 출발했지만 야권은 공공사업에 '기금을 쓰는' 방안, '받을 돈'을 늘리란 주장을 내놔 역주행했다. 야당추천 공동자문위원장이 국회 대토론회에서 보험료·운용수익 아닌 혈세로 기금을 보전하는 걸 당연시하며 여당추천 위원장의 재정안정론을 공박할 때부터 '개혁 좌초'를 확신했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