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게임사 행보에 의아한 시선도… 문화재청 설득해 시작 10년간 누적 기부금 76억, 조선불화 '석가삼존도' 등 6점 환수 "젊은층과 가까운 게임사가 하면 더 잘 들어줄거라 판단했어요"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홍보·사회환원사업 총괄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홍보·사회환원 총괄
"라이엇게임즈는 1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층과 가까운 기업인 데다 가장 현대적인 놀이문화를 만드는 게임사에요. 저희가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합시다'라고 외치면 조금 더 잘 들어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구기향(사진) 라이엇게임즈 홍보·사회환원사업 총괄은 지난 2012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이끌어왔다. 그는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문화유산 보호 설득에 많은 분들이 지지를 보내줬고 이용자들도 함께 동참해줘 (사업을) 수년간 지속해올 수 있었다"며 "문화재청 같은 파트너들도 진심으로 같이 고민해주고 있다. 그냥 될 수 없는 사업인데 합이 잘 맞아서 굴러가고 있구나 싶다. 뿌듯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구 총괄은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초기부터 구상한 인물이다. 지난 2012년 당시 오진호 라이엇게임즈 대표가 회사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구 총괄이 남편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생각해냈다.
구 총괄은 2004년부터 넥슨, 2009년부터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하다 2012년 라이엇게임즈에 합류했다. 구 총괄의 전공은 신문방송학이다. 그러나 넥슨에서도 홍보뿐 아니라 사회환원 사업을 담당했고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도 특정 프로젝트를 홍보·기획한 터라 라이엇게임즈에 입사할 당시부터 사회환원 사업을 어떻게 펼칠지를 고심했다. 다만 처음부터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입사 후 첫 회의에서 오 대표가 엑셀시트 하나를 보여줬는데 김장 돕기, 연탄 나르기 등 세상 좋은 일이 많이 쓰여 있었어요. 하지만 주어를 바꾸면 어느 기업이든 할 수 있는 일이었죠. 말 그대로 라이엇답고 이용자들과 직원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사회환원은 아니었던 거에요."
구 총괄은 이후 약 한 달 동안 매일같이 라이엇게임즈다운 사회환원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당시에는 생뚱맞은 소리라며 넘겼는데 회사에 출근하니 한국적인 LoL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 문헌자료 등을 찾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라이엇게임즈의 이용자들 나이에서 제일 관심 없는 부분이 문화재라는 사실과 남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라이엇게임즈는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이다. 지금은 '한국 문화유산 지킴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하지만 초기에는 라이엇게임즈의 행보에 의아한 시선이 많았다. 국내 기업들도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하는 곳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문화유산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게임업계에서, 심지어 국내도 아닌 외국계 기업이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하니 물음표를 던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결정하고 문화재청 민관협력 부서에 전화를 했는데 담당 전문위원이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었어요. 단순히 비용을 지원한다고 해서 넙죽 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 혹은 단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포인트를 알아야 사업을 구체화하고 적재적소에 비용을 투입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라이엇게임즈가 어떤 회사인지, 왜 이런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지 열심히 설명했죠."
구 총괄은 2012년 3월쯤부터 문화재청 민관협력 부서 담당위원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라이엇게임즈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시장 1위를 할 때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과의 연결선이 좋은 회사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 라이엇 게임즈 제공
결국 2012년 6월 문화재청과 후원약정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2년부터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을 위해 문화재청 등에 후원한 누적 기부금은 총 7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약 7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낸 셈이다. 그 사이 총 6점의 문화재 환수에도 성공했다. 조선시대 불화 '석가삼존도'를 시작으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중화궁인'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척암선생문집 책판' △'조선왕실 유물 '보록'의 환수를 도왔다.
문화재 환수뿐 아니라 문화 유적지나 문화유산 보존 처리, 화재 소실에 대비한 3D 정밀도 작업도 진행한다. 구 총괄은 라이엇게임즈가 하는 여러 사업 중 소개하고 싶은 내용으로 청소년과 이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꼽았다. 그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이용자 대상의 역사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못했는데 지난 25일부터 '티모 문화유산 원정대'를 재개했다"며 "올해는 프로그램 규모를 1년에 총 16회, 인원은 400명 정도로 기존의 2배로 키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구 총괄은 올해도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문화유산 보호·지원 사업을 앞장서서 이끌 예정이다. 청소년과 이용자 대상의 역사 교실은 물론 7번째 국외 문화재 환수도 지원한다.
"저 역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취향의 시대에 게임은 노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중 하나죠.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게임과 연계한 이색 행보로 라이엇게임즈 이용자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