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지입제 피해 790건 접수…'번호판 사용료' 수취 사례가 절반 이상 #화물차 기사인 A씨는 B운수업체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3000여만원의 번호판 사용료를 요구해 의아해졌다. 게다가 그 돈을 운수회사 대표와 부자관계인 자의 통장으로 3번에 걸쳐 지급해야 일감을 줄 수 있다고 요구해 A씨는 국토교통부에 이 건을 신고했다. 이에 국토부는 B업체에 대해 행정처분과 세무조사 검토를 요청했다.
#C운수업체는 화물차 기사 D씨에게 새로운 계약서에 '집중 출하 시에는 18~20시간을 수송'이라는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내용을 넣은 계약을 강요했다. 만약 서명하지 않으면 더 가혹한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겁박해 D씨는 국토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협박과 강요를 일삼은 C업체에 대해 국토부는 수사를 의뢰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부터 한 달간 화물차 기사를 대상으로 지입제 피해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한 결과 79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30일 밝혔다.
이 중 '운송사업자가 번호판 사용료를 요구, 수취한 경우'가 가장 많은 유형으로 신고의 53.7%(424건)를 차지했다. 이어 △지입료를 받고 일감을 제공하지 않은 경우 14.3%(113건) △화물차량을 대·폐차하는 과정에서 동의 비용으로 도장값을 수취하는 경우 4.2%(33건)로 집계됐다.
차주의 피해 외에도 '운송사의 불법증차' 신고도 다수 접수됐다. 대부분 자체 담당자를 매수 또는 기망해 공급이 제한된 화물차량을 허가·등록하는 방식이었다.
지입제는 화물차 기사가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한 뒤 사실상 독립적인 영업을 하면서도 운송사에 번호판 대여 비용인 지입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입전문 운송업체들은 번호판 사용료로 2000만~3000만원, 위·수탁료로는 월 20만~30만원을 받는다.
국토부는 피해 신고가 접수됐거나 위법행위를 한 정황이 있는 운송업체 53개 사를 현장조사해 신고 내용이 맞는지 확인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는 불법 증차를 했다가 지자체로부터 감차 처분을 받은 운송사에 화물차주가 정당한 명의 이전을 요구했는데도 그 대가로 1500만원을 요구한 사례가 적발됐다. 운송사가 기사를 고용해 직접 운영하는 조건으로 허가받은 차량(친환경 화물차)을 임대 방식으로 편법 운영을 하거나,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등록된 장소가 아닌 곳에 실제 사무실을 운영한 경우 등 추가적인 위법행위도 확인됐다.
국토부는 각종 대금을 운송사업자 법인이 아닌 개인 명의의 계좌나 현금으로 요구하는 등의 탈세 의심사례 97건에 대해 국세청에 세무조사 검토를 요청하기로 했다.
지자체에는 212건에 대한 운송업체의 영업정지(최대 30일) 등 행정처분 검토를 요청하고, 경찰에는 사기·협박·강요 등 불법 의심사례 32건을 수사 의뢰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통해 탈세가 확인되는 경우에는 과소신고한 세금에 가산세까지 추가로 추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불법증차 의심 차량 76대에 대해선 추가 조사를 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번 지입제 피해 집중신고기간 운영 및 현장조사를 통해 화물운송시장에 대한 정상화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표준운임제 도입과 지입제 개선을 위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국회에서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물류신고센터 운영과 지속적인 현장조사를 통해 일부 운송사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는'화물운송산업 안정화를 위한 불법행위자 퇴출 결의대회'를 열었다. 400여명의 화물운송사업자들은 "불법행위자 아웃"을 외치면서도, 당정이 추진하는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 발표에 대한 업계의 깊은 우려를 표출했다.
이들은 당정의 정상화 방안대로 차량등록명의를 차주로 변경하게 되면 운송사업자는 그 지위를 상실하고, 운송사업자의 재산권인 사업권이 차주에게 강제로 이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극소수의 대기업 물류자회사가 물량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최소운송의무 기준 강화시 대부분의 중소 화물운송업체는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시장에서 강제 퇴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광식 화물연합회장은 "최근 당정은 화물운송시장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진단도 없이 화물운송산업의 구조 개혁이라는 명목하에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며 "오늘부터 화물운송업사업자 전체는 시장 질서를 흩트리는 불법행위자를 우리 스스로 퇴출시키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살을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국민과 정부의 인식이 바뀔 수가 있다"고 자정을 촉구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