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SVB은행이, 유럽에서는 크레디트 스위스은행의 매각 보도가 나오는 등 금융 이슈로 세계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각종 조치로 예금자의 피해는없는 것 같다.그런데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축을 했던 학생이 은행의 파산으로 모은 돈을 전부 잃으면서 대학생이 아닌 대학병원의 청소부가 되었다면 그 심정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1910년 루이지애나주에서 흑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비비안 토마스는 등록금으로 사용하려고 모았던 저축을 잃고 19살의 나이에 벤더빌드 대학에 청소부로 들어가게 된다. 대공황이 시작된 시점이었기에 청소부 월급으로는 하루하루 생활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일하는 틈틈이 생리학과 화학에 대해 독학하는 한편 실험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온갖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어두곤 했다.
그런데 우연히 이 노트가 의사인 블래록의 눈에 띄게 된다. 그 아이디어의 탁월함을 한 눈에 알아본 블래록은 토마스와 함께 매일 밤 동물실험을 지속적으로 했다. 청소부 신분의 토마스가 정상적으로는 실험에 참석할 수 없음을 고려한 특별한 배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혈액 부족이 쇼크의 원인임을 밝혀내어 출혈로 인한 쇼크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시 소아심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입술이 파래지면서 대책없이 죽어가는 '팔로 4징'이라고 불리는 선천성 질환이었다. 프랑스 의사 팔로가 처음 기술한 병으로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에 구멍이 뚫리고, 폐동맥이 좁아져 있으며, 우심실에서 폐동맥으로 혈액이 나가기 힘들어지면서 우심실이 더욱 강하게 수축하기 위해 비대해지고, 좁아진 폐동맥 쪽으로 대동맥이 치우치는 양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소아심장을 전문으로 하는 타우시그는 폐동맥 혈류의 감소가 청색증을 비롯한 각종 증상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만일 팔로 4징 환자들의 좁아진 폐동맥에 외과적으로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준다면 보다 많은 혈액을 폐로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청색증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 1941년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블래락은 토마스를 그의 팀에 포함시킬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그를 연구실 실무 책임자로 임명했다. 흑인은 별도의 출입구와 화장실을 쓸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다.
1943년 타우시그는 블래록에게 팔로 4징의 치료를 위해 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의 일부를 폐동맥으로 연결하면 증상이 호전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미 토마스와 동물실험을 한 적이 있는 그는 적극적으로 동물실험에 들어갔다. 200여 마리의 실험견을 대상으로 2년간 인위적으로 청색증을 만든 다음 쇄골하동맥을 폐동맥에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드디어 1944년 11월 15개월 된 여아에게 성공적으로 수술을 하게 된다. 이 방법은 지금도 일부 선천성 심장 질환에서 본격적으로 심장에 대한 수술을 하기 전 단계에서 시행되고 있다. 당시에는 불가피하게 동맥의 일부를 희생시켰지만, 지금은 인조혈관으로 대동맥과 폐동맥을 연결해서 기존 동맥의 손상을 피하고 있을 뿐 기본 개념은 같다.
이 수술은 블래록과 타우시그가 공동으로 개발했기에 'B-T 단락(B-T shunt: Blalock-Taussig Shunt)'이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B-T-T 단락, 즉 '블래록 토머스 타우시그 단락'이라고 부른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심장 수술을 발전시키고 수술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개발하며 젊은 의사들을 교육하게 된다. 토머스는 1968년 존스홉킨스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1976년에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온갖 좌절과 차별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토마스의 집념과 노력과 그의 재능을 편견없이 인정하고 발굴한 블래록에 의해 심장병 치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