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수요 부진 이중고에
美 "중국 의존 말라" 압박까지
삼성·SK, 생산성 타격 불가피
대만 25% 세금감면 지원에도
韓 세액지원 여전히 오리무중

한국 반도체가 경기침체와 미국의 대(對) 중국 압박이라는 이중 덫에 걸려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8.9%를 반도체가 책임졌던 만큼, 이는 비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월과 비교해 42.5%(44억달러)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금액 기준으로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D램 가격은 작년 2월 말 3.41달러에서 1년 뒤인 지난달 1.81달러로 47% 하락했다. 마찬가지로 두 회사가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가격 역시 14% 내려갔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부문이 선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삼성전자(메모리 비중 70% 이상)와 SK하이닉스(90% 이상)의 전체 매출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높아 부진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더 이상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지 말고 자국 산업 육성에 이바지해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이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금지하는 조항을 내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전체 낸드 중 40%를, SK하이닉스가 D램의 4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주력인 메모리 사업을 절반 가까이 줄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정부는 이에 대해 "중국 내 우리 기업의 현재 투자 수준 보장을 미국과 논의할 것"이라고 지난달 28일 밝혔으나, 미국 정부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메모리에 편중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한계가 이 같은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뒤 정부와 기업들은 비메모리반도체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세계 각국의 노골적인 반도체 지원 정책에 비해 우리 정치권의 지원책은 소극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대만은 이미 지난해 반도체 기업이 자국 내에 투자를 할 경우 최대 25% 세금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반도체 투자에 대한 대기업의 세액공제를 6%에서 8%로 올리기로 했다가, 올 들어 다시 정부 주도로 25%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이 대기업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낮다. 국회가 지리한 공방을 하는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만 2조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분기(영업이익 5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1조원 수준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분기에 2조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삼성전자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지원받은 것이나 SK하이닉스의 모회사인 SK스퀘어가 알짜 계열사인 SK쉴더스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8646억원 규모 투자 재원을 마련한 것 등은 이 같은 실적부진과 투자재원 마련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사이에 경쟁사들은 비메모리에서 국내 업체와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작년 3분기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6.1%로 전 분기(53.4%)보다 2.7%포인트(p) 늘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6.4%에서 15.5%로 0.9%p 감소하며 양사의 격차가 벌어졌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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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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