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이 대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은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게도 '미세공정 한도'를 두게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생산규제까지 하겠다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복수의 반도체 업계 소식통들을 인용해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일본-네덜란드의 수출 통제에 대한 (공식) 합의에 앞서 관련 장비 비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미국이 지난 1월 말 워싱턴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네덜란드, 일본 측과 협상을 진행해 자국이 지난해 10월 발효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한다는 동의를 받아냈다고 보도한 바 있다.
SCMP에 따르면 중국의 대형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뜻을 같이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올해 반도체 장비 및 소재 비축량을 늘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베이징의 한 반도체 장비 기업이 "여러 개 대형 창고에 반도체 소재와 부품을 가득 채웠다"면서 미국으로부터 수출 통제를 받지 않는 반도체 관련 소재와 부품까지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도쿄에서 중국 고객용 반도체 장비 및 소재 조달 업무를 맡은 또 다른 소식통도 "(중국의) 몇몇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 계획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부품과 장비를 과잉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러한 반도체 장비 및 소재 과잉 주문은 매우 이례적이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관련이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 같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국내 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23일(현지시간)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현재 한국 기업에 적용 중인 반도체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난 후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두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10월부터 중국에서 18나노(㎚) 이하 미세공정 제품을 생산할 수 없게 된다. 두 업체는 중국에 수십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백악관 측에 유예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올해 상반기까지 극심한 침체를 겪은 뒤 하반기부터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수요회복에 적시 대응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서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