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대출이 있었고, 대출에는 이자가 붙었다." 금융역사 전문가인 애드워드 챈들러의 최근 저서 '금리의 역습'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논쟁을 겪었던 이자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자를 죄악시했던 중세 기독교 사회 이후로도 많은 학자들은 이자의 정당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이자를 약탈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했다가도,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인식으로 기울기도 했다. 논쟁의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아직까지도 이자 수취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에서도 '무라바하' 등 다양한 금융방식으로 이자를 대신한다.
대출은 물론 예금에 대한 이자가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자의 적정 수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우리나라도 '대부업법' 및 '이자제한법' 등으로 법정최고이자를 정해두고 있다. 이를 초과하는 이자 계약은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법정최고이자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에는 연 66%에 달했지만, 이후 7차례 인하되면서 현재는 20%까지 내려왔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대로 기준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법정최고이자가 너무 낮아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중단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서민들이 돈을 빌리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최고금리를 정하지 말고 시장금리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내리게 하는 연동형 법정최고이자 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금융당국도 법정최고이자 손질을 검토하다가 중단했을 정도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결정하는 기준금리는 사실상 최저이자 역할을 하게 된다. 기준금리와 법정최고이자가 정해지면 그 범위 내에서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금융거래가 이뤄진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최고이자를 받고 싶을 테고, 돈을 빌리는 사람은 최저이자를 내고 싶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장금리는 기준금리와 법정최고이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춰간다. 신용이 높은 기업이나 사람에게는 서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니 낮은 금리가 적용될 테고, 반대의 경우는 당연히 높은 금리가 적용될 테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돈을 떼일 위험에 비례해 이자를 높이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위험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측면이 크다.
대출자 입장에서도 돈을 빌려주는 쪽의 처분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대출자들은 대출업체들이 제시하는 이자를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회사를 찾는다. 대출비교 플랫폼 등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현상을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예금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가장 높은 예금을 주는 금융회사들을 손쉽게 찾는다. 예금자보호한도가 아직까지 5000만원에 머물고 있는 탓에 높은 이자를 제공하더라도 덜컥 거액을 맡기지 않는다. 여러 은행·저축은행 등에 분산하는 방법 등으로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가 기준금리와 법정최고이자, 예금자보호한도 등을 결정하면 시장은 살아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금리까지 간섭하게 되면 시장의 기능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시장금리에 대한 결정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이자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국가 권력의 이자 개입 역사도 오래됐다. '금리의 역습'에 따르면 국가의 금리 간섭은 중국에서 발명됐다. 중국의 금리 통제 전통은 한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당나라, 송나라로 이어졌다. 현재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경제 발전을 이유로 이자를 통제하면서 기업에는 낮은 이율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경제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겠지만 부의 쏠림은 심화됐다. 늘어난 부의 대부분은 최상위 계층의 몫이었고, 일반 서민들은 저축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이자를 받지 못했다.
중국이 경제를 발전시킨 이 같은 방식은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방식을 베낀 것이다. 당시 군사정부는 은행이 기업들에게 대출해줄 금액까지 정해줬다고 한다. 관치금융이라는 말이 당연한 시대였다.
1960년대에나 어울렸을 것 같은 관치라는 단어가 다시 유행한다. 금융당국 수장의 한마디에 금리가 춤을 춘다. 취약계층을 위해서라지만 미심쩍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가 금리를 마음대로 조정할 때면 그 열매를 가져가는 세력은 언제나 따로 있었다. 경제학자 에드워드 쇼는 "이자율 통제가 공무원 권한을 강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때마침 윤석열 정부는 '은행은 공공재'라면서 은행 수를 늘리겠다고 한다. 새롭게 탄생할 은행이 누구의 공공재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