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은 '공공의 적'이다. '공적'이 된 건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서민 살림은 팍팍해지는데 '이자 장사'로 고액 연봉에 성과급·퇴직금 잔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이 정착된 데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지지율을 높일 때 흔히 사용하는 수법 중 하나가 미운 놈을 골라 '악당'으로 만들고, 두들겨 패는 것이다.
이 원장의 언행을 보면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적지 않다. 세상 만사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는 검사의 얼굴이 비쳐진다. 포퓰리즘과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는 모습이다. 그의 철학은 "금융사들이 과점을 악용해 손쉽게 돈을 버는 건 문제가 있다. 과점 체제를 깨뜨려야 하며, 지배구조도 바꿔야 한다. 대출금리를 내리고 사회공헌도 확대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은 하나은행 3조1692억원, 신한은행 3조450억원, KB국민은행 2조9960억원, 우리은행 2조9310억원 등 12조141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가운데 1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성과급으로 썼다.
이 원장이 역대 금감원장과 다른 점은 시장과 개별 금융사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여수신 금리는 떨어지는 기현상조차 벌어졌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순이익 중 3분의 1은 주주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국민 몫으로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은행들은 일제히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환원율을 30%선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원장은 그후 "과도한 배당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을 바꿨다.
은행 CEO 선임에도 개입했다. 연임을 위해 뛰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해선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으며,"금융회사의 CEO 리스크를 관리하는 건 금감원의 책무"라며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에서 밀어냈다.
이같은 행보는 몇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첫째, 금융사의 경영을 '정치의 영역'으로 이끌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금리는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정부가 직접 간여하는 것은 1970년대나 있던 일이다. 가격(price)을 정부가 인위로 규제할 경우 '필망'이라는 건 역사의 교훈이다.
최근의 금리 상승은 과도하게 지속됐던 저금리로 인한 '버블 경제'의 후유증이다. 고금리를 구조조정 계기로 삼는다면 국민경제에 꼭 손해인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금리가 높든 낮든 그 손실과 이익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은 금리 개입이 아니라 서민금융을 늘리고, 정상적 금융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감원의 금리 결정 개입은 통화정책을 무력화시키고, 한정된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막으며 ,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저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해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75억달러(약 35조75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씨티(148억달러·19조2400억원), JP모건(110억달러·14조3000억원) 등 한 금융사 순이익이 국내 4대 은행 순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유럽의 도이체방크(58억2100만달러·7조5673억원), BNP파리바(80억9800만달러·10조5274억원) 역시 국내 은행들을 넘어선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순이익을 많이 낸다고 금융당국이 금리를 낮추고 지배구조를 바꾸며, 사회공헌을 늘리라고 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금감원이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담당하는 곳은 금융위원회다. 금감원은 금융위가 만든 법과 규정 아래 금융 회사와 시장을 감독하는 기구다. 금감원장은 금리나 금융사 CEO 선임, 은행 신규 설립 허용, 성과급 체계 개편 등을 앞장 서 언급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무던한 성격이어서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두 기구 간 갈등이 진즉 표면화됐을 사안이다.
이복현 원장은 취임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사 CEO들과 만나 메시지를 내놓느라 바쁘다. 세간에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설이 파다하다. '자기 정치'를 위해 금감원장 자리를 활용한다는 시각에 동조하고 싶진 않다. 금감원장은 금융감독을 하는 자리지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