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인건비 올라 손실 불가피 메이플자이 시공 맡은 GS건설 9300억원서 1.4조로 증액 요청 국토부서 '유권해석' 받았지만 대법 판례에 막혀 기대 어려워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 시공 현장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은 없다.'
일명 '물가변동 배제특약'으로 불리는 시공 계약 조항으로 국내 건설사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중소건설사는 도산 걱정까지 하고 있다. 기존 계약대로 시공을 진행한다면 급격한 물가상승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큰 손실을 피하기 어려운 상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올초 업계는 국토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긴했지만, 기존 대법원 판례가 있어 실질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물가변동 배제 계약조항'에 코너 몰린 건설사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시멘트나 철근 등의 원자재값 인상과 금리 상승 등의 여파로 이대로는 공사 진행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민간건설 현장들이 늘고 있다. 저금리 시기에 '물가변동 배제' 조건으로 시공 계약을 한터라 공사비를 올리지 못해 현장마다 손실이 크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타격이 너무 크다.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민간공사 현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손실을 보고있는 데 '물가변동배제' 특약때문에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못하고 있다"면서 "업계 신뢰도 문제도 있는데다가,책임준공 조항때문에 손해가 나더라도 공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피해는 원도급 건설사로 끝나지 않는다. 하도급업체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 분쟁 조정 신청'은 2019년과 2020년 10여건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33건으로 전년대비 135% 급증했다. 특히 2021년 3분기에만 21건이 한꺼번에 접수됐다. 올해는 9월까지 벌써 35건을 기록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연말까지 더 많은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나마 공공에서 발주한 사업은 숨통이 틔였다. 공공공사는 국가계약법과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등에 따라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건설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지난 6월 국토부는 공공 발주기관에 업무처리지침을 전달했고 조달청은 자재별 가격 인상요인을 반영토록 조치한 바 있다.
반면 민간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과 민법에 따라야 해 공공공사처럼 조정을 할 수 없다.
공사비 문제는 중견건설사 뿐만 아니라 대형건설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현장 중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시공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초유의 공사중단까지 겪어야 했고, 이 외에 신반포3차·경남통합재건축(래미안원베일리, 시공 삼성물산) 등의 현장도 공사비 관련 이슈가 있었다.
최근에는 신반포4지구(메이플자이)의 시공을 맡은 GS건설이 시행 측(조합)에 공사비 인상 요구에 나섰다. 9300억원이었던 기존 공사비를 1조400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배제조항 민간도 적용한다지만 대법원 판례에 막혀= 대형건설사들은 그나마 협상력이 있지만, 중견건설사들로선 여력이 없다. 지난 4월에는 민간공사 현장에서 물가변동 배제특약으로 분쟁이 발생하거나 이에 의한 손실을 건설사업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대한건설협회를 통해 이 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인지와 해당 부분이 무효인지 여부를 국토부에 질의까지 했다.
당시 국토부는 긍정적인 유권해석을 내렸다. 건설산업기본법 제 22조 제 5항 제 1호(건설공사 도급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그 부분에 한정해 무효로 한다)가 민간공사에도 적용된다고 회신한 것이다. 특히 "계약서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특약)이 명시되어 있어도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물가 상승으로 인한 건설업체들의 자재비 부담이 크다는 상황을 인지한 국토부는 지난 9월 '제3회 국토교통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계약금액 조정을 위한 물가변동 시행 방식을 명확하게 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에 품목조정률 외에 지수조정률 방식도 명시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아직 업계 의견을 취합해 조정 중이라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이 개정 사항은 앞으로 계약을 할 현장들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미 계약을 한 현장들이 혜택을 받긴 어렵다. 추후 개정될 계약서를 사용하더라도 해당 특약(물가변동배제)을 넣은 현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국토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한 소송도 쉽지 않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가 유권해석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김문수 법무법인 오른하늘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이미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한 판례가 있어 국토부의 유권해석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분쟁에서 유의미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대법원에서도 계약체결 당시 예상할 수 없는 물가변동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 이에 관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