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지난 3일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독일 등 9개국에서 광고 요금제를 시작했다. 비싼 단가에도 불구하고 올해 광고물량이 '완판'되었다고 한다. 광고매체로서 넷플릭스의 영향력 역시 입증된 것이다. 전 세계 OTT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2022년, 글로벌 기업들이 선봉에 서서 미디어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광고시장은 여전히 낡은 규제에 묶여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특히 방송광고는 내용규제, 유형규제(중간광고, 토막광고 등), 수량규제(총량규제), 거래규제(지상파·종편 방송광고 판매대행 규제), 품목규제 등 사실상 모든 유형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콘텐츠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다시 콘텐츠에 투자해 고품질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국내 방송사들이 제작투자를 확충하는데 매우 큰 장애물이다.
그 중에서도 특정 방송사들의 광고판매대행 영역을 제한하고 있는 거래규제의 경우, 글로벌 OTT 시대에 뒤쳐지는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꼽힌다. 현행 '방송광고판매대행법'(이하 '미디어렙법') 상의 업무제한 규정은 과거 막강했던 지상파방송의 시장 지배력이 타 매체 광고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전통매체와 온라인매체의 영향력이 역전된 지금, 미디어렙사를 규제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비대칭규제인데다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016년 온라인(인터넷·모바일)광고는 이미 방송광고를 추월했고, 2020년 총 광고시장의 과반을 넘길 정도로 이미 광고시장은 '온라인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글로벌 OTT까지 가세해 압도적인 시청자 수, 방대한 고객시청습관 데이터, 콘텐츠파워를 앞세워 광고 판매를 하게 된 상황이다.
지난 수년간 OTT가 국내 영상콘텐츠 제작·유통·소비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는데, 광고시장 진출까지 그대로 두고 본다면 국내 매체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나아가 미디어 시장 전체의 글로벌 OTT로 쏠림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우려도 있다.
국내 100대 광고주의 TV광고비 총액(2022년 9월 기준, 한국광고총연합회)은 약 2066억원, 이 중 글로벌 기업 17곳이 집행한 TV광고비는 약 350억원으로 전체의 17%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들은 내수 위주의 TV광고보다 도달 범위가 넓은 뉴미디어 매체, 특히 OTT 광고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동안 광고시장의 중심이 방송광고에서 온라인(포털광고, 유튜브광고 등)으로 옮겨가던 와중에 OTT가 가세해 광고매체로서의 방송은 더욱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만일 글로벌 소비재 회사 모두가 국내 방송광고 시장에서 이탈한다고 가정하면, 17% 이상의 방송광고비가 이탈하는 것이며 그만큼 방송 재원은 축소된다. 이는 콘텐츠 제작 여건 악화로 이어져 콘텐츠 품질 저하, 제작 감소 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광고효과 극대화를 원하는 광고주들이 TV, 모바일, 인터넷, OTT 등 매체 믹스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특정 방송사들만 여기에 부응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해도 미디어렙법에 따른 허가미디어렙사를 통해 방송광고만 판매할 수 있고, 뉴미디어 광고 집행을 위해서는 또 다른 뉴미디어렙사를 찾아 판매대행을 의뢰해야 한다. 처음부터 미디어믹스 통합전략을 수립하고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길이 법률로 원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 간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되었고,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사업자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지위와 압도적 이용자 수를 무기로 국내 시장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크로스미디어렙 도입은 기존 사업자를 무턱대고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방송광고 시장이 이미 온라인 광고 시장에 추월당한지 오래임에도 미디어렙법은 과거 방송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또한 방송사 중에서도 지상파·종편에 한해서만 광고판매대행영역 제한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불공정 경쟁을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2021년 방송사업자 광고매출액 증감 추이를 보면 지상파 20.8%, 종편PP 13%, CJ ENM은 2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규제를 받지 않는 방송사의 매출이 더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이 규정이 시장 활성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K-콘텐츠 열풍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하며 국내 제작역량을 육성해왔던 방송사들의 기여가 크다. 시청자의 눈높이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지금, 지속적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광고판매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주요 방송사들은 제작재원이 날로 축소되고 국내 방송산업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플랫폼 기업이 디지털광고 시장을 장악한데 이어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광고 시장에 들어와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지금의 불공정 경쟁상황을 한시 바삐 해결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TV 시장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방송,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미디어 광고 판매가 가능한 크로스미디어렙 도입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근간을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렙법의 업무제한 규정은 폐지해 현재 글로벌 플랫폼 위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광고비가 국내 콘텐츠 제작사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K-콘텐츠의 지속 발전,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