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발밑으로 많은 위험의 순간을 예감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경제위기의 강을 큰 충격 없이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선제적 금리 인상과 다른 나라보다 긴축적인 재정기조를 견지함으로써 고물가의 고삐를 잡고 있다. 미국의 8.2%와 유로존의 9.9%에 비하면 5.6% 물가상승률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를 견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경기둔화 내지는 침체를 동반하기 때문에 늘 경기부양론과 맞서야 하는 탓이다. 실제 영국에서 대규모 감세안을 들고나와 큰 실패를 경험했다. 일본이 엔화 약세와 지속적인 물가상승에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고수하고 있지만, 불길한 결말이 예상된다. 우리도 과감한 영세 자영업 소상공인 대책 등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으나, 정책 기조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건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금년 상반기까지 2.9%의 성장을 이루어냈고, 연간 전체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전망한 2.6% 성장세가 거의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 특별한 경기부양 없이 민간의 건실한 소비에 의해 성장세가 유지된 점은 고무적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여건이 훨씬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내년에도 2% 초반인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과를 예견하는 국제기구들이 많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환율은 과거 2008년 경제위기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지만, 비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위기로 인해 에너지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어 킹달러 현상을 근본적으로 억제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 대부분의 통화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의 움직임은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만약 원화가 적절히 평가절하되지 않았더라면 환투기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수 있고,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을 드리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높은 환율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를 염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위기의 강을 무사히 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걱정되는 사태도 있었다. 레고랜드의 부도를 계기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불안정성 문제다. 금리가 공격적으로 인상되면, 자금을 우선 확보하는 쪽에 이익이 발생하는 반면, 신용도가 취약한 쪽은 자금 조달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장의 과잉반응을 통제하고 소통을 강화해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정책당국의 모습이 아쉬웠다. IMF가 10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정책당국이 금융시장의 유동성 리스크를 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밝힌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50조원의 대책을 마련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 21일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가 공격적인 금리인상의 속도 완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미국 증시가 급등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지금이 그때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오히려 정말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인디안 서머'같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고물가를 초래한 근본요인이 해소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갑자기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중국이 제로 코로나의 잘못된 정책을 버리는 희망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현재로선 그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내 예측이 맞는다면 내년 상반기가 지금까지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금리 인상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본격적인 경기 하강이 시작될 수도 있다.

물론 더 어려운 시기가 온다고 해서 우리의 대응태세가 새삼스럽게 달라질 필요는 없다. 방심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정책 기조를 지속해간다면 우리의 든든한 경제 체질과 세련된 능력은 이 어려운 경제위기의 강을 순조롭게 건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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