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오스트리아서 활동중… 대구오페라축제서 '니벨룽의 반지' 연출 맡아 16시간짜리 '4부작'… 작품마다 독립적이나 작곡가 의도 알려면 모두 봐야
요나 킴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미학과 문학, 철학을 전공하고, 빈 국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2005년 독일 부퍼탈 시립극장에서 오페라 '자이데'로 데뷔, 2015년 국립오페라단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등의 연출을 맡았다.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에서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지난해 함부르크 오퍼에서 오페라 '노르마'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는 등 활발한 연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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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요나킴'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그야말로 대작 중의 대작이다. 작품의 창작에만 대략 26년이 걸렸으며 전체 공연 시간만 해도 16시간이 넘는다. 4부작의 개별 작품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은 각각 완결된 구조를 갖는 독립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네 작품을 같이 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2005년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이 내한하여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초연(세종문화회관)된 바 있으며, 그 이후로는 전체가 한꺼번에 공연된 적이 없다.
오는 10월,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9.23~11.19) 무대에 '니벨룽의 반지' 전막이 오른다. 만하임 국립 오페라극장이 2021년 선보인 프로덕션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활동 중인 한국인 연출가 요나 킴(Yona Kim)이 맡았다. 내한을 앞두고, 이른 아침 스위스의 한 산골에 있는 그를 영상으로 만났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오를 '니벨룽의 반지' 전막 공연(10.16~23)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작품에 대해 직접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방대한 작품입니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작품이지요. 오페라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너무 멀고 질감이 다른 예술 장르인데, '니벨룽의 반지'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연될 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가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감각 수용 체계를 극한으로 요구하죠. 관객과 제작진 모두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주면서 동시에 끝까지 해냈을 때 크나큰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 프로덕션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관객들이 이 어마어마한 대작을 1초도 놓지 않는 긴장감을 가지고 몰입하길 바라진 않습니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기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즉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이를 통한 허망함과 덧없음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네 개의 공연이 모두 끝났을 때 연주자는 물론 관객 역시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엄청난 집단적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4부작이 각각 서로 다른 날에 공연됩니다. 각 작품이 가진 특징이 있을까요.
△"전체가 연결되는 시리즈이긴 합니다만, 개별 작품마다 장르적 재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라인의 황금'은 비교적 현대적이고, 극과 음악 모두 가장 흥미진진합니다. 인기가 많은 '발퀴레'는 낭만적 오페라의 전형을 띠며, '지그프리트'는 오페라 코미크, 마지막 '신들의 황혼'은 모든 면이 총체된 그랜드 오페라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외면되지 않는 신화를 위해
-'반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의 욕망, 두려움 등을 상징합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신 '보탄'의 실수로 모든 게 시작됩니다. 신이란 존재는 약점이 없어야 하는데 보탄은 그런 면에서 인간적입니다. 신, 용이나 신비로운 칼 노퉁 같은 것이 등장하면서 '신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론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권력을 쥐고 싶은 욕망, 사랑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등이요.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1804~1872)는 "신이 우리를 창조한 게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 신을 창조한 것"이라고 했는데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신의 형상이 그렇습니다."
-이번 연출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아마 '니벨룽의 반지'는 연출의 역사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겁니다. 이 작품을 대할 때 '신화적 요소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일까?' 하는 질문에는 관심 없었습니다. 시각화 작업을 잘 할 수 있는 장르는 사실 무대 극작품보다는 영화죠. 이번 프로덕션은 리얼리즘으로부터의 결별입니다. 무대는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영국의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1925~2022)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작품을 연출해오셨지만, 바그너의 음악극에는 첫 도전입니다. 음악과 극이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고 통합되기를 바랐던 바그너의 의도를 어떻게 구현했을지 궁금합니다.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ein totales Musiktheater) 개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비단 극과 음악뿐 아니라 조명과 의상, 움직임 등 무대의 모든 요소의 총체죠. 이번 프로덕션에서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미리 녹화된 영상이 무대 위에 투사되는 한편, 라이브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찍은 영상이 송출되기도 합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거대한 서사시로, 한 장면이 시작될 때 전후 맥락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관객이 모르는 정보나 극 속 인물들의 기억,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공포심 등을 영상으로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라이브 카메라는 등장인물인 '로게'로 분해 무대에 등장합니다. 모든 걸 알고 뒤에서 관망하는 역할이죠. 백스테이지부터 오케스트라 피트 등 모든 곳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찍습니다. 관객으로서 간과할 수 있는 무대의 숨겨진 장면을 보여주죠."
-만하임 국립 오페라극장과는 오랫동안 작업해오셨지요. 이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는 것에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교류에 대해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요?
△"만하임 극장 소속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리스트는 물론 이번 프로덕션의 분장과 조명, 영상 테크니션 등 어마어마한 인력 전체가 한국에 내한합니다. 한국에서 연주되는 일이 적어 오히려 관객들의 편견이 없을 것 같아 더욱 기대됩니다. 만하임 극장 오케스트라는 바이로이트 축제에 자주 서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독일 솔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공연은 문화 교류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축제로 인해 오페라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지식과 열정도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전막 공연을 모두 경험한다면, 오랜 시간 작품에 몰입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