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시카고 타자기', 2017년 tvN에서 방영된 TV드라마 제목이다. 2017년 서울에 사는 유명 작가(유아인 역)가 미국 시카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1930년대 타자기를 계기로 빚어지는 세 남녀의 낭만적인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제목이 '시카고 타자기'인 이유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 발명가가 1930년대 시카고에서 거주했기 때문이다. 발명가 송기주는 미 휴스턴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뒤 시카고의 한 지도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1934년 언더우드 타자기를 개량해서 한글 가로쓰기가 가능하도록 했다. 일명 '송기주 타자기'다. 송기주 타자기는 지난 2014년 후손에 의해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됐다. 2019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타자기'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하지만 송기주 한글타자기가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라는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최근 '이원익 타자기'가 미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타자기 수집가들에게만 알려진 일이다. 1914년 제작된 이원익 타자기의 발견으로 한글 기계화 역사와 실재는 20년 앞당겨지게 됐다.

이원익 타자기는 현재 미 시라큐스대학이 위치한 오논다가(Onondaga) 카운티 역사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다. 오논다가는 타자기 유명브랜드 '스미스 프리미어' '스미스 코로나'의 공장이 위치했던 곳이다. 박물관은 한때 세계 최대 타자기 공장지역이었던 시라큐스 전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타자기들을 수집, 전시중이다.

스미스 프리미어는 원래 총기 제작회사였다. 1889년 타자기 사업에 뛰어들어 '스미스 프리미어1'을 개발했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전환하는 쉬프트(Shift) 키 없이 대문자와 소문자를 모두 배열하면서 글자 수만 76개에 달했다. 이후 1896년 '스미스 프리미어2'를 출시했고, 1901년 '스미스 프리미어5', 1908년부터 '스미스 프리미어10'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미스 프리미어의 자판 글자 수는 84개로 이뤄졌다.

재미교포 이원익은 당시 판매되던 스미스 프리미어10에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덧붙여 한글 타자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어 스미스 프리미어 회사를 설득, 한글 타자기를 출시했다. 스미스 프리미어 10은 한글뿐만 태국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 자판을 제작, 판매되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언어가 일본어보다 먼저 기계화되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타자기에는 제품명을 한글로 '스미트 프레미어- 글시쓰는 귀계', '뎨十호 Smith Premier Typewriter No.10'으로 적었다. 당시는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세로쓰기가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키보드를 누르면 왼쪽으로 90도 눕혀진 글자가 타자되어 세로로 읽는 방식이었다. 자판 글자 수가 모두 84자였으므로 초성과 종성의 글자를 사용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ㅅ'은 4개나 되었다.

글자 수가 많다보니 타자속도는 다소 느렸다고 한다. 더구나 한글 타자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국내에 유입되기 보다는 미국 교포들에 의해서 일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6년 만들어진 '김준성 타자기' 역시 국내에는 없다. 김준성 타자기는 재미교포 목사인 김준성이 레밍턴 영자 타자기에 한글 자판을 입힌 풀어쓰기 타자기였다. 김준성은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가로쓰기의 어려움 때문에 풀어쓰기를 선택했다. 당시 레밍턴 타자기가 한글 타자기 200대를 제작, 국내에 들여와 판매했다. 지난 2010년 한 재미교포가 김준성 타자기를 미국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구입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그 존재를 알렸으나 해당 블로그는 현재 방치되어 있다.

한국인이 한국인다운 것은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10월에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올해 열린 576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의 말과 글의 힘이 곧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며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한국어 빅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어의 디지털 전환은 붓과 펜으로 쓰던 한글을 타자기 자판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시작을 알린 타자기는 안타깝게도 미국에만 존재한다. 이제라도 이원익 타자기와 김준성 타자기를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 내년 577돌 한글날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원익·김준성 타자기 앞에서 기념사를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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