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 첫발 창업후 건강상태 등 알려주는 벨트에 집중 불면증 치료에도 첨단기술 적용 맞춤처방 美 보스턴에 현지 거점… 세계시장 공략도
웰트는 국내 기업 중 디지털 치료제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간 곳으로 꼽힌다. 웰트 직원들이 디지털 치료제 개발현황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 웰트 제공
디지털 치료제 기업 '웰트'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치유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소비자와 헬스케어 세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서 한발 앞서서 미래를 개척하겠다."
강성지 웰트 대표. 웰트 제공
디지털 치료제 기업 웰트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다. 웰트를 이끄는 강성지(36) 대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력을 가진 경영자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강 대표는 의학 공부를 하면서도 공대, 경영대 수업에 관심이 많았다. 경영대 수업을 찾아가 듣기도 하고 공대생들과 동아리에서 만나 발명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학생 시절 스타트업을 창업해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던 강 대표가 졸업 후 정한 진로는 의사가 아닌 공무원이었다.
강 대표는 "졸업하자마자 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진로를 고민하다 보건복지부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의 건강관리서비스 담당조직에서 3년간 일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시범사업을 담당했다. 그 후 공무원을 그만두고 또 한번의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한 강 대표는 2014년, 삼성전자가 헬스케어 사업을 키운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해 무선사업부에 입사했다. 그러다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씨랩' 공고를 보고 '스마트벨트' 프로젝트를 지원해 선정됐다. 휴대전화와 연동되는 스마트 허리벨트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건강, 습관을 읽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컨셉이다. 웰트(WELT)라는 회사 명은 '웰빙 벨트'의 줄임말이다.
씨랩에 선발된 프로젝트팀은 진행에 따라 삼성전자 사업부로 이관하거나, 외부 스타트업으로 출범하는데, 웰트는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다. 삼성은 웰트의 투자사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창업으로 두번이나 실패를 경험하고는 국내 대표 기업 삼성에 입사했는데, 또 나가서 창업을 하라니 처음에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창업을 할 기회도 많지 않다는 생각에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6년 창업 후 3년 간은 벨트에 집중했다. 스마트벨트의 버클과 스트랩에는 센서가 들어있어 허리둘레, 활동량, 활동시간 등을 자동으로 측정해 준다. 버클에는 가속도센서와 홀센서가, 스트랩 사이사이에는 자석센서가 달려 있다. 이들 센서에서 나오는 신호를 포착하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와 연결, 전용 앱을 이용해 과식 여부, 앉은 시간, 걸음 수, 호흡 등 사용자의 신체 정보와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오래 앉아있으면 일어나라고 하거나, 매일매일 걸어야 할 운동량을 팝업으로 알려주는 방식이다. 벨트는 한번 충전하면 두달 정도 쓸 수 있다.
강 대표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내놓아도 막상 이용자들이 꾸준히 쓰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벨트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강 대표가 최근 주목하는 영역은 디지털 치료제다. 웰트가 분사했을 즈음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인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제 '리셋'이 허가를 받았다.
전 산업의 소프트웨어화 물결이 일면서 헬스케어 영역에서도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치료제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이나 하드웨어 중심의 의료기기와 달리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입 대신 '머리로 먹는 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환자들은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스마트폰을 켜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에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의사는 그 과정에서 환자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는 주체가 된다. 고령자의 인지능력 향상을 보조해 주는 레이싱 게임 '뉴로레이서', ADHD 치료용으로 개발된 게임 'EVO'도 3세대 신약으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제에 포함된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성장세를 키워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18년 약 17억3000만 달러에서 27.2% 성장해 2023년 57억70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웰트의 디지털 치료제 '필로우(Pillow) Rx'. 웰트 제공
웰트는 '필로우(Pillow) Rx'라는 불면증 치료제를 개발 중으로, 이르면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시판 허가가 기대된다. 그에 앞서 지난해 9월 정부로부터 확증임상 승인을 받았다. 필로우Rx는 의사와 만나서 하던 불면증 환자 상담과 교육을 비대면 서비스로 바꾼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불면증 환자가 몇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자는 중에 몇번이나 깼는지, 뒤척임이나 코골이는 어느 정도였는지, 기상 시간은 언제인지 등을 측정한다. 낮에 낮잠을 잤는지, 커피나 술을 마셨는지도 입력해서 수면에 미치는 환경적 요인을 분석한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와 환자가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환자들로부터 수집한 생활 습관 데이터와 수면 일기를 이용해 맞춤형 수면 일정을 제시하고, 환자 생체신호와 병원 데이터를 연동해 투약 정보, 기저질환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방을 한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인 만큼 처방을 하는 순간 환자와 밀착해서 그 환자를 이해한다. 미국 등에 비해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서 후발주자이지만 기술 진화 속도를 더 빠르게 가져가면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믿든다"라고 말했다.
웰트는 글로벌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올해 보건산업진흥원이 선정하는 미국 진출 지원기업 10곳에 포함돼 미국 보스턴에 현지 거점을 세웠다.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에서 네트워킹을 쌓아 기술과 사업의 확장성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아시아 기업 중 처음으로 DTA(세계디지털치료제협회)에도 가입해 디지털 치료제 임상·규제 가이드라인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 한화투자증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포스코기술투자, 한독 등으로부터 누적 1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강 대표는 "그동안의 치료가 운전자에게 두꺼운 지도책을 던져주는 식이었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3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상세경로를 제시하는 내비게이션 앱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대를 나온 의사들조차 지도책만 갖고 운전을 시작하는 격이었다"면서 "그러다 보면 환자를 데리고 이상한 길로 돌아가고 잘못된 경로를 찾아갈 위험이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의사들을 위한 내비게이션 앱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탄소감축을 위해 전기자동차에 대해 보조금을 주고, 인공지능 바우처나 데이터 바우처를 주듯이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도 일종의 바우처 제도를 만들어서 환자들의 본인 부담률을 낮춤으로써 초기 시장이 크도록 도움을 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