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무역적자·증시 패닉 셀링 리더십 부재로 위기 의식조차 없어 추경호 경제팀 "괜찮다"할 때 아냐 외환·금융위기 등 환난때 돌아봐야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추락하는 경제 성장률,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진 원화 가치. 증시에선 '패닉 셀링' 현상이 나타나고 부동산 가격은 거래절벽 와중에 급락 중이다. 요즘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보다도 더 우려스런건 우리 사회에서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위기를 돌파할 '경제 리더십'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리더십이 없으니 위기의식 또한 보이지 않는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인데 원·달러 환율과 에너지 가격 상승 추세로 봤을때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에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황에 사용하는 고위험 차주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 은행 부실로 이어져 금융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IMF와 같은 위기로까지 가진 않았지만 앞으로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가 상승보다는 금융시장 불안 이슈가 더 컸지만 지금은 물가와 금융 불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도 이런 견해에 동의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에서 비롯됐는데 지금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까지 조이니 경기침체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는 경기가 좋아지는 와중에 물가가 높아졌다"며 "지금은 당시와는 패턴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금융IT학)는 무역 위축을 우려했다. 대한민국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교역 위축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뜻이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최근 내년 세계무역 증가율 전망치를 3.4%에서 1%로 대폭 낮춘 바 있다.
이처럼 위기가 성큼 다가오는 데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석 교수는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엇박자를 지적했다. 물가 억제를 위해 재정·통화정책을 모두 타이트하게 운용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문재인 정부보다 내년도 재정지출을 늘린다는 것이다. 유류세를 낮춘 데 대해서도 에너지 수입액 증가를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석 교수는 재정정책은 불특정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진짜 피해를 보고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핀셋 지원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모든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리더십이 굳건하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칫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추경호 경제팀이 야당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해명만 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정부가 야당과 싸울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개혁 정책들이 거대 야당의 벽에 막혀 번번히 좌절되는 걸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의 경제 리더십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규성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방수'였다. 노태우 정부 재무장관을 마지막으로 관가를 떠난 뒤 8년 만인 1998년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등판한 그는 기업이 하루에 100개씩 무너지고 실업자가 3배로 불어난 절망의 한가운데서 1년 반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1998~1999년 재경부 장관을 지내는 동안 한국은 IMF에서 지원받은 195억달러의 빚 중 70%에 달하는 135억달러를 조기 상환했다. 그리고 2001년 1월 나머지 60억달러까지 모두 갚아 한국은 이후 'IMF 모범생'으로 불렸다. 공공 노동 기업 금융 등 4대 개혁을 앞세워 위기 극복의 길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여 3년만에 IMF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때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었다. 금융위기 당시 우리 경제가 파고를 헤쳐나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가 장관에 임명되던 2009년은 금융위기 직후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2009년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2%로 낮춰 잡고, 국회를 설득해 사상 최대인 28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부임 후 곧바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팀을 꾸려 계획의 두배인 20억달러 기채에 성공하면서 국제 금융계의 신뢰를 얻었다. 2009년 0.3%였던 성장률은 이듬해 6.2%로 급반등했다. 2009~2011년 그가 기재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경제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지금은 추경호 경제팀이 "대한민국은 괜찮다"고 앵무새처럼 얘기하고 다닐 때가 아니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는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촉발되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도 최근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로 떨어지는 등 국제금융계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대한민국도 자칫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