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브룩스 지음 /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펴냄
19세기 말까지 생물학은 박물학자의 몫이었다. 생물을 세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술(記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생물도 기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생물학도 통제된 실험으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물학에 가까웠던 생물학이 실험생물학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생물학은 동물행동학, 진화생물확, 생리학, 발생학, 유전공학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생물학의 변화를 이뤄낸 주인공이 바로 초파리다. 초파리가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초파리는 생애 주기가 짧다. 태어나 생식하고 죽기까지 몇 주에 불과하다. 번식력도 매우 강하고 생장 조건도 까다롭지 않다. 실험 대상으로 삼는데 안성맞춤이다. 1900년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초파리를 처음으로 실험 대상으로 데뷔시킨 배경이다.
이후 초파리는 유전학 연구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유전자들이 염색체에서 직선으로 늘어서 있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유전자 지도도 초파리의 것이었다. 돌연변이의 물리적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염색체에 X선을 쬐는 실험을 할 때에도 실험대상이 된 동물이 초파리였다. 이제는 초파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생물학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다. 초파리는 암 치료법을 찾는 연구, 알츠하이머병과 헌팅턴무도병 같은 신경변성질환 연구,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수면장애와 시차증(時差症)의 유전적 연구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하나의 미천한 생물이 20세기 생물학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저자 마틴 브룩스는 탁월한 생물학 이야기꾼으로 유명하다. 그의 교양 과학서는 정평이 나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진화생물학을 전공하고 8년간 초파리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때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관찰하며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부분은 한편의 잘 조직된 픽션을 읽는 것처럼 독자를 빨려들게 만든다. 유쾌한 문장과 유머는 덤이다. 이 책의 미덕은 또한 초파리를 통해 현대 첨단 생물학의 일단을 조망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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