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경영' 이나모리 명예회장 별세 교세라 그룹 세계적 기업 성장 故 우장춘 박사 사위로 유명
2012년 한국서 강연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 그룹을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파산한 일본항공(JAL)을 재건해 일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손꼽혀왔다.
교세라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24일 교토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30일 발표했다.
그는 가고시마현립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후 27세인 1959년 자본금 300만엔(약 3000만원)과 직원 28명으로 교토세라믹(현 교세라)을 창업해 연매출 1조6000억엔, 종업원 7만 명을 웃도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세라믹 부품 제조업체로 출발한 교세라는 반도체 소재와 장비에서부터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기술(IT) 기기, 세라믹칼 등의 소비재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제조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신한다. 사업 다각화로 교세라는 창사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그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해 회사를 성장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을 10명 이하의 소집단(아메바)들로 재편해 집단마다 시간당 채산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경영이다. 시간당 채산의 목표치를 월간 및 연간으로 책정하고 부문별로 실시간 점검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과 매출 증가를 꾀했다.
그는 사업분야를 확장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1984년 NTT가 독점하던 통신사업에도 뛰어들어 현재 일본 2위 이동통신사인 KDDI의 전신인 다이니덴덴(DDI)이라는 장거리 전화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 내 최대 이동통신 시장은 NTT가 독점하고 있어 통신비가 매우 비쌌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점보다 경쟁을 통해 통신비가 싸지면 국민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해 사명감을 갖고 신사업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KDDI는 현재 일본 2위의 이동통신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종업원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진보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평소 자신의 경영철학이었다.
이같은 다짐은 팔순을 눈앞에 둔 2010년에도 변함 없었다. 그는 JAL이 방만 경영과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파산하자 당시 민주당 정권의 요청을 받고 무보수로 회장직을 맡았다. 적자 노선을 중심으로 국제선 40%, 국내선 30%를 각각 줄이고 4만8000명이던 인력을 3만2000명으로 대폭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JAL은 그가 취임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흑자로 돌아섰고 2012년 도쿄증시에 재상장됐다.
좌우명을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고 밝힌 그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기업 경영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역설해왔다. 그가 강연 등에서 자주 언급한 것은 '이타(利他)의 마음'이었다. 다소 희생을 치르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이타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사업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보답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한국 농업의 싹을 틔운 것으로 평가받는 우장춘 박사의 사위(넷째 딸의 남편)이기도 하다. 교세라에 따르면 이나모리 회장은 결혼 전 우 박사를 만났을 때, "같은 연구자로 이야기가 한껏 무르익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우 박사의 사망 후, 이나모리 회장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장인의 묘를 찾곤 했다. 또한 박지성이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할 때 교세라가 이 팀의 메인 스폰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