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사고 경각심 높아지지만 실상은 악화 중 바이든 '총기와 전쟁' 외치지만 실효성 의문 건국 시 수정헌법이 총기소유를 권리로 인정 광활한 국토, 고립된 개인은 방어용 총기소유 보수화 대법원, 끊임없이 총기 규제 무효판결
미국에서 총격 사건이 쏟아지고 있다.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무고한 시민, 특히 어린이들까지 희생양이 되고 있다. 교통사고보다 총기로 인해 숨진 어린이가 더 많다고 한다. 이렇게 비극이 반복되지만 총기 규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왜 미국은 '총기 천국'이 됐을까. 과연 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무기력한 '총기와의 전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눈썹을 잔뜩 모으면서 "Enough!"라고 거듭 외쳤다. "더 이상 안 된다!" "이대로 계속 둘 수는 없다!"라는 뜻이다. 지난달 대국민 연설에서 나온 말이다.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총기 참사와 관련해 의회에 총기 규제법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이었다. 그는 연설에서 11번이나 "Enough!"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일상적인 장소들이 '킬링필드'로 바뀌고 있다"면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뭔가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악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4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하이랜드파크에서 또 무차별 총기 참사가 발생했다. 독립기념일 행진 인파를 향해 21세 백인 청년이 건물 옥상에서 고성능 소총을 "두두두" 난사한 것이다. 환호는 비명으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246주년 독립기념일은 피로 물들었다. 적어도 7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됐다. 중상자가 적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일을 피로 물들인 사건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시카고 시내에서만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 최소 72명이 총에 맞아 이 중 10명이 사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이랜드파크 사건 발생 직후 또 대국민 성명을 내고 "총기폭력 확산과 맞서 싸우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총기와의 전쟁'은 어쩐지 무기력해 보이기만 한다.
매일, 미국 어딘가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 미국에선 살인·자살을 포함해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으로 사망했다. 올해 6개월간 사상자가 4명 이상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무려 30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어린이의 죽음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교실이 '살인 현장'이 되면서 아동 사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구 수를 넘는 4억 정의 총기가 미국에 있고, 총기 규제도 허술하니 이런 참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4억 정의 총기는 군대가 소유한 총기를 제외한 수치다.
◇미국인은 왜 총에 집착하나
이러한 피해를 감안하면 당연히 총기 규제가 이뤄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총기 규제는 별 진척이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한 개척자들은 자기 방어와 사냥을 위해 총을 사용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대량 학살'도 총에 의해 이뤄졌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민병대들은 각자의 총으로 영국군과 싸웠다. 독립을 쟁취한 후 1791년 수정헌법 2조가 새롭게 제정됐다.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전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되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헌법에 총기 소지가 '시민의 권리'라는 점이 명시된 것이다. 이후 총은 미국인의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총기는 노예제도 유지를 위해서도 요긴하게 사용됐다.
두 번째로 도시와 농촌 간 차이를 들 수 있다. 도시 지역에는 총기 규제 옹호자들이 많다. 농촌 지역은 그 반대다. 미국 농촌은 광활하다. 이웃집 가는데 자동차로 수십 분 걸리는 지역도 많다. 이런 지역에선 치안을 경찰에 의지할 수 없다.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따라서 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농촌 주민들은 총기 규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는 총기 관련 이익단체들의 힘이 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 단체가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명목상으로 400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조직이다. 할리우드의 명배우 찰턴 헤스턴이 1998년 NRA 회장을 맡기도 했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Guns don't kill people, People kill people)가 슬로건이다. 즉, 총기 사건은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회비로 모이는 돈이 매년 2억 달러(약 2615억원)가 넘는다. 이 돈을 정치인 로비에 뿌린다. 주로 공화당 정치인의 후원금으로 투입한다. 이러니 총기 규제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네 번째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다.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할 대법원이 보수파의 장악으로 정치화된 것이다. 대법원은 수정헌법 2조를 앞세워 총기 규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23일 연방대법원이 '뉴욕주 총기법'을 기각해버린 것이 대표적 예다.
뉴욕주에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 허가를 받지않는 한, 총을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법률이 있다. 뉴욕주 총기협회 회원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뉴욕주의 법이 미국 수정헌법 제2조를 위반했다"며 총기옹호론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관의 이념적 분포가 보수 우위로 쏠리면서 생긴 결과였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꺼번에 대법관 3명을 보수 성향 인사로 교체해버려 보수와 진보 균형을 깨버렸다.
이번 소송에서 공화당 성향의 대법관 6명은 '기각'에 손을 들었고, 민주당 성향의 법관 3명은 '지지' 의사를 밝혔다. 결국 '6대3' 판결로 뉴욕주 법률은 위헌이 되어버렸다. 이번 판결로 뉴욕주와 비슷한 방식으로 총기 휴대를 제한하는 캘리포니아, 하와이, 메릴랜드 등 다른 8개주와 워싱턴 D.C.의 법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이어 연방대법원은 '낙태 합법화 판결'도 공식 폐기해 버렸다.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을 역시 '6대3' 의견으로 합헌 판결한 것이다. 대법관은 종신직이라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사망 때까지 일할 수 있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은 '기울어진 판결'을 앞으로도 계속 내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핵심'인 수정헌법 2조를 개정해 버리면 될 것 같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상·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50개 주 가운데 3분의 1이 동의해야 한다. 민주·공화 양당 의석 비율이 거의 50대 50 비율이라 개헌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총에 맞지 않을 자유를 달라
총이 없다면 총으로 인한 살인이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총기의 풍부함'이 총기 범죄를 늘리는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엄격한 총기 통제가 총기 사고와 총기 범죄 희생자 수를 극적으로 줄일 것은 자명하다. 물론 200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굳어진 문화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비극의 반복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
관건은 대통령의 지도력보다는 미국 국민의 의지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밀레니엄 세대를 포함한 젊은이들의 힘이다. 미국 역시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인해 젊은 세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힘은 NRA를 넘어설 수 있고,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 그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