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을 곡, 배울 학, 아첨할 아, 세상 세. 곡학아세. 학문을 왜곡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정도를 벗어나 권력이나 민심에 아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른 나이에 출세한 후진(後進)의 시건방짐을 보고 원숙한 원로가 점잖게 타일렀다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했다.

한나라 경제(景帝)는 즉위하자마자 두루 인재를 찾았다. 그 가운데 90세의 원고생(轅固生)이란 노 시인이 있었다. 그를 등용하려 하자 쇠약한 노구 등을 들어 중신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경제는 그를 등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원고생을 소장(少壯) 신하들은 업신여겼다. 그 중에서도 젊은 학자 공손홍(公孫弘)은 유독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다. 원고생은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학문의 정도(正道)가 무너져 속설(俗說)이 만연하고 사설(邪說)로 인해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네. 자네는 학문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서 올바른 학문을 세상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 이 세상 속물(俗物)들에게 아첨(阿諂)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나."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의 말에 그 자리에서 사죄했다. 공손홍의 일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의 '성상납 의혹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놓고 국민의힘이 두 차례 윤리위원회를 열었다. 여당 대표가 성상납 관련 증거인멸 교사라는 '파렴치성 의혹'으로 당 윤리위에 회부된 것은 국내 정당사에서 처음이다. 수차례 성 접대라는 휘발성 큰 내용도 문제지만, 이 사건에 대해 이 대표가 취해온 해명도 납득하기 힘들다. 이 대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 나를 음해하는 말들이 조리가 없다'는 등 마치 남 얘기하듯 한다. 이 대표가 결백하다면 보다 분명히 말해야 한다. '나는 성상납 받은 적 없다. 나는 증거인멸을 교사한 적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대표는 온갖 미디어와 종편 등에서 말재주를 자랑해왔다. 이번 일도 당대표라는 직(職)을 갖고 말을 흐리고 있다. 이쯤 되면 '곡직아세'(曲職阿世)다. 국민의힘에는 공손홍을 사람으로 만들었던 원고생 같은 이가 없는가.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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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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