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지율 하락이라는 성적표가 날아들었다. 지지율 하락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비전이 명확하다면 말이다. 문제는 미래의 모습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경우다. 귀국한 윤 대통령은 새 정부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제질서의 틀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격변기다. 경제 여건까지 나빠지고 있다. 이제 윤 정부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대선 전략을 업그레이드 한 '윤석열 2.0'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설득하며 실행에 나서야 한다. 자칫 실기할 경우 한국이 국제질서 변화라는 격랑에 휩쓸려 '미아'가 되고, 국내 정치와 경제도 혼돈에 빠질 수 있어서다. 한 정권의 성공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명운이 걸린 시기라 중요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최근의 긍정 평가 여론은 42.6%다(알앤써치, 2일~4일 조사). 부정 평가는 53%로, 한 달 전보다 10% 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지지율보다 10% 포인트 넘게 높은 셈이다. 사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등락은 지지층의 특성상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게 아니다. 윤 대통령에게 표를 주었던 유권자들은 뭘 해도 무조건 지지할 그룹이 아니다. '이니 하고 싶은 건 다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층과는 다르다. 문 정부의 내로남불과 이념에 치중한 정책의 부작용에 지쳐 대안을 찾던 그룹, 그리고 2030청년층 일부가 기존 보수 유권자와 결합해 만들어진 지지층이다. 비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연합의 성격이 컸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 그룹들은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고, '뽑아줬으니 이제 잘 하는지 지켜볼게'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일견 '취약한 지지기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팬덤에 의존하지 않는데다 정치 신인이라는 것, 다시 말해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이 없다는 건 '큰 정치인'이 되려는 이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의미 있는 장기적 과제들을 추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윤 대통령에게 지금 중요한 건 지지율 그 자체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취임 2개월이 되어가는데 '윤석열의 비전'이, '윤석열이 그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국민들이 명확히 모른다는 현실이다.
인수위가 열심히 노력했고 '6대 국정목표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심플하면서도 강렬하게 와 닿는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국민이 많다. 내용이 복잡했거나, 강렬하지 않았거나,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세 가지 모두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모르고 있다면, 그건 비전이 아니라 '내부용 슬로건'에 불과한 거다. 국민이 비전에 공감해야 현재의 어려움과 고통을 참으며 기다려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이 '윤석열 1.0'이라면, 이제 '윤석열 2.0'이라는 새 시대의 모습을 담은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내용의 두 축은 지정학적 급변기의 번영전략과 한국정치 업그레이드 방법이다. 여기에 공정과 상식을 녹여내면 된다.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전쟁이 가능한 블록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세계사적 격변기에 한국은 어떻게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블록에 더욱 적극 참여해 G7의 G10 확대 등을 주장하며 어떻게 지분을 확보할 것인가. 그리고 이 비전이 왜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 더해 한계를 드러낸 한국정치를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미중 격돌, 동맹과 블록, 공급망 재편이라는 절체절명의 격랑 속에서도 검수완박이나 반일죽창가로 날을 지샌 구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임계점에 달했다. 이제 어떻게 낡은 정치를 정리하고 어떤 새 정치를 만들지 제시해야 한다. 구중궁궐 청와대 이전과 대통령 출근길 기자문답을 이은 정치 개혁 플랜들이 필요하다.
이렇게 파고(波高)가 높아지고 있지만, 새 정부가 '윤석열 2.0'을 통해 새 시대의 군사외교, 경제 전략과 한국정치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 간다면 대한민국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에서도 또다시 멋지게 적응해 성장과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계화 시대의 국제질서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