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신산업전략연구단 선임연구위원
정책을 논하는 전문가 회의에 가보면 "제가 최근에 어디 어디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이러이러한 사례를 보고 매우 놀랐다. 그런 정책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교수, 연구원, 기업인 할 것 없이 특히 명망 높은 원로들이나 해외 유학 경험자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런데 그분들 중 그 나라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제도적 차이를 비교해서 "그 제도 이면에 있는 사회경제적 맥락도 우리와 유사하니 우리에게 적용해 볼만 하다"라든가, "우리와는 이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니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분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몇 해 전 역사적 제도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할 무렵 한 회의에서 이런 장면을 다시 목격했는데,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한국은 스냅샷 정책으로 가득 찬 제도의 잡화상이구나. 그동안 우리는 제도적 역사적 맥락이 다른 여러 선진국으로부터 다양한 제도들을 스냅사진 찍듯이 수입해서 적용해 왔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정합성이 떨어지는 여러 제도들을 한데 모아 놓은 잡화상이 되었구나."

그 후 신문의 칼럼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을 때도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곳곳에서 제도의 변화, 정책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서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한다.

그런 목소리의 예로 노동시장 제도 개선(52시간제, 최저임금), 자본시장 제도와 기업 거버넌스 개선(물적 분할, 상속세, 복수의결권), 대입제도 개혁과 학벌체제 타파(대학입시 폐지, 서울대 10개 만들기), 신산업 규제 완화(P2E, 타다, 코인 거래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는 보통 이해당사자의 의견, 경험 소개, 문제제기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모두 소중하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는 다른 선진국 사례를 선(善)으로 놓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단선적 발전 모델을 상정하는 것이다. 사회 발전을 단선적 모델 안에 두고 대안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모든 약이 약효와 부작용을 지니듯이 모든 제도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그리고 사회 발전의 경로도 다양할 수 있다. 한 경로에서 좋았던 제도라도 다른 맥락에 들어가면 별로 힘을 못 쓰고 부작용만 나타날 수도 있다.

둘째는 이해당사자나 관찰자들이(정책 전문가들도) 흔히 범하는 실수로 해외 제도를 표면만 보고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해외여행 가서 스냅사진 찍어 오듯 겉모습만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스냅샷 정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과거 우리나라 각 부문에 제도와 시스템이 미비할 때는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는데, 이제는 나름대로 시스템과 틀이 많이 굳어져서 경로의존성이 생겼기 때문에 해외 제도의 표면적 도입은 자칫 원하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물론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의 제도와 시스템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회과학은 실험이 어려운데, 선진국의 역사는 제도의 실험 결과를 보여주는 실험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부문의 제도는 다른 부문 제도와의 상호보완성과 역사적 경로의존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제도는 그 사회의 공시적, 통시적 맥락과 떼어서 생각하면 곤란하며 해외 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때는 다음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그 나라의 경제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그런 경제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맥락이 없다면 그것을 조성하는 것은 가능한가, 어려운가?"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이런 제도적 감수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 도입하는 데도 이런 복잡한 질문과 조사와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는 뭐 하나도 간단하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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